[광주갈피갈피]강진 유배 정약용 ‘탐진어가’ 속 ‘궁선’

조광철 | 2018-07-25 06: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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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장어 잡으러 물결 헤쳐가는 활배
 정약용이 강진 유배시절에 지은 탐진어가(耽津漁歌)라는 시가 있다. 시는 처음 이런 구절로 시작한다. ‘계랑춘수족만려/탱취궁선양벽의.’<신문제작시스템이 지원하지 않는 한자가 있어 부득이 한글로만 싣습니다.-편집자주>

 이 구절을 한국고전번역원은 ‘계량에 봄이 들면 뱀장어 물때 좋아 / 그를 잡으로 활배가 푸른 물결 헤쳐간다’고 풀이하고 있다. 또한 이 구절 뒤에 정약용이 직접 붙인 설명인 ‘선상장증자, 方言謂之弓船(방언위지궁선)’에 대해서 ‘배 위에다 그물을 장치한 배를 방언으로 활배‘弓船’라고 하였음’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그런데 이 번역은 여러모로 이상한 구석이 많다. 계랑(뭔가 잘못인지 고전번역원은 계랑을 계량으로 쓰고 있다)을 시의 공간적 배경인 듯 이해하고 있는데 이 시의 배경이 됨직한 강진만의 어디에도 계랑이란 지명을 확인할 수 없다. 그리고 ‘배 위에다 그물을 장치한 배를 방언으로 활배’라고 한다고 했는데 모든 배가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중선망 같은 일부 그물은 활배처럼 배에다 그물을 장착하는 경우도 있어 딱히 배 위에 그물을 장착한 배라는 이유만으로 활배라고 불렀다는 점도 이상하다.
 
▲그물 네 귀퉁이 달아낸 활 모양 ‘궁망’
 
 오랫동안 필자는 이 시의 정확한 의미가 궁금했다. 그러던 중에 그 실마리를 아주 의외의 곳에서 발견했다. 계량은 사실 지명이 아니라 계강(桂江)의 물결이란 뜻인 듯하다. 계강은 중국 남부의 민월지방에 있던 강이다. 당나라 시인인 유종원이 그곳에서 유배생활을 했던 이유로 이후 계강은 유배지 또는 유배생활을 우회적으로 표현하는 말이 됐다. 그래서 계랑은 이 시를 짓는 정약용 자신이 유배 중임을 완곡하게 표현한 말일 것이다. 따라서 ‘계랑춘수족만려’는 유배생활 중인 강진에 봄이 왔고 여느 때처럼 뱀장어도 다시 찾아왔다는 의미일 것이다.

 두 번째 구절은 또 어떨까? ‘탱취궁선양벽의’에서 ‘탱’이란 글자는 기둥 또는 버팀목을 가리킨다. 이 기둥은 그물을 장착하기 위해 나무로 만든 틀을 말하기도 한다. 이 구절의 보다 정확한 의미는 그 뒤에 나오는 정약용의 설명 문구인 ‘선상장증자, 방언위지궁선’에서 분명해진다. ‘성상장증자’에서 ‘증’은 특정한 형태의 그물을 말한다. 네 귀퉁이를 끈으로 달아내어 버팀목에 매어둔 그물이다. 따라서 이 설명 문구는 배 위에 네 귀퉁이를 달아내 그물을 펼치고 다니는 배를 가리켜 강진에서는 활배 또는 궁선이라고 부른다는 뜻이다.

 궁선, 또는 그물의 네 귀퉁이를 달아서 활 모양의 나무에 달아낸 그물인 궁망이 예전에는 흔했다. 18세기에 영산강변인 무안에서 현감을 지낸 김이만이란 사람이 쓴 글에도 궁선 얘기가 나온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궁선은 큰 나무로 틀을 만들어 활처럼 굽혀 그물을 매단 뒤 강물의 흐름과 마주한 채 그물을 강물에 가라앉힌 다음 때를 기다렸다가 들어올린다. 생선과 새우가 무수히 그물 안에 들어오면 그물을 더듬어 잡아내면 그만이다”고 했다. 영산강에서 궁선 혹은 궁망을 사용했다는 기록은 1900년대 기록인 ‘한국수산지’에도 보인다. 지금의 나주시 오량동과 동강면에서 궁망을 사용 중이라고 했다.

 사실 궁선이나 궁망은 우리나라에만 있던 것이 아니다. 오창현 선생의 논문 ‘20세기 전반 일본 안강망 기술의 전파와 조선 어민의 수용과정’을 보면 일본 아리아케 해에서 사용했던 그물인 시게아미[手押し網]의 그림이 나오는데 오창현 선생의 말대로 영락없이 궁선과 닮았다. 어디 그뿐인가? 몇 주 전 필자는 베트남의 다낭이란 곳을 여행했고 그 도시를 가로지르는 한강(漢江·한자가 서울의 한강과 같다)에서 이런 궁망을 여러 번 목격했다.
 
▲장흥군서 입수 ‘뜰망배’와 유사 형태
 
 이 궁망이 어느 나라에서 먼저 사용했는가는 그리 중요치 않을 것이다. 사실 궁망을 뜻하는 영어단어 lift net(들어 올리는 그물이란 뜻)으로 인터넷을 검색하면 전 세계의 수많은 곳에서 과거에 사용했거나 오늘날에도 사용 중인 궁망의 이미지가 끝도 없이 쏟아져 나온다. 다만 우리나라에서는 이제 그 실물을 보기 어려울 뿐이다.

 하지만 다행히 필자가 근무하는 시립민속박물관의 1층 전시실에는 실제로 이런 궁망을 장착한 배가 있다. 이 배는 1980년대 장흥군 용산면에서 입수했다. 입수 당시의 이름은 ‘뜰망배’였고 지금도 같은 이름으로 부른다. 뜰망은 배 한쪽에 활 모양의 틀에 그물을 달아 매고 이 틀을 지렛대 삼아 그물을 바닷물에 잠기게 하거나 들어 올린 데서 비롯된 말이다. 그리고 이 말은 이런 유형의 그물을 일컫는 lift net이나 궁망을 표현하는 또다른 한자표현인 부망(敷網)과도 상통한다. 그런데 당분간 이 뜰망배 또는 궁선을 보기는 어려울 듯하다. 시립민속박물관은 지난 30년간의 묵은 때를 벗고 새로운 콘텐츠로 바꾸기 위해 리모델링 공사를 시작하고 이를 위해 7월 30일부터 1년여 간 휴관에 들어간다.
조광철 <광주시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

 ‘조광철’님은 태생이 목포, 그러나 광주에 대한 누구보다 극진한 애착은 갖은 사람. 숨겨진 광주 이야기를 찾기 위해 옛 지도를 살피고, 토박이들의 살아있는 증언을 듣고, 기록의 습관을 유전자 속에 각인시켜 놓은 사람. 그의 가장 큰 기쁨은 증언과 조사를 통해 흐트러진 시간의 파편을 끼워 맞추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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