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irst Beeswax Candlemakers in Korea’s Modern Age<2>

| 2018-05-16 06:05:03


 To get the story on Bin, a German-born man with the birth name Dirk Fuendling, I along with LorrynSmit (the Gwangju News’s own photo editor) interviewed him at his home. His home and workshop are located in the beautiful mountains of Damyang County near Gwangju. Our trip from Gwangju took almost an hour. Once inside the Damyang area, we passed a beautiful lake and enjoyed the silence of the green mountain scenery.
 During the interview, Bin’s wife and work partner, Lee Young-hee, accompanied us. Our interview with them was warm and relaxing because of their hospitality and the peaceful atmosphere of their home. Here is how our conversation went.
 -GN: Do you have a beehive here?
 △Bin: No, we don’t keep bees. We need a lot of beeswax, so it wouldn’t make sense. From one hive you can’t even get one kilo. We use three to four tons a year. There’re a lot of bees that actually work for us [laughs]. Instead, we get our beeswax from beekeepers all over the country. They send it to us already melted down in a big block that we have to clean further. Later, we’ll work with a national beekeeper association.
 -GN: Besides Korea, is there any other country in your candle market?
 △Bin: No. Sometimes we’re contacted by people involved with Korean craft products in Hong Kong. They just started selling some of our candles, but I don’t know how that works. We quite recently sent Easter candles to China and America. But I have to say, it was for a Korean sister who lives in a missionary station in China and America [laughs].
 -GN: If you don’t mind answering, how much do you sell in a year?
 △Bin: I must ask my boss for that [laughs].
 △Lee: Two hundred million won.
 △Bin: Two hundred million won a year in sales, not profit. So, that would be roughly 200,000 USD in sales per year. In profit, it’s maybe about 40-50 percent of that amount.
 -GN: How many workers are there in your candle factory?
 △Bin: Well, we don’t have regular workers. We have two or three young students who work for us. They come to work during vacation time and on weekends. We have one additional worker, but no regular workers. If we were to really employ somebody on a regular basis, then it would be for continuous work because we’d have to pay quite a lot of money as nowadays in Korea wages are going up. With the minimum-wage system and all the insurance fees we’d have to pay, it could be a burden. We’re at a difficult stage because our business is so big that we can’t do it all alone, yet it’s too small for us to have several regular employees.
 -GN: Do you have a foreign customer base in Korea?
 △Bin: No, not really. Our website is basically in Korean. It gives some information and a telephone number for English services.
 △Lee: It’s not our target now.
 △Bin: We could probably do much more in marketing. But, you know, even though we can expand our capacity, we’re already quite busy. Most of our marketing and advertising comes indirectly from the television companies that come to our place quite frequently. There are hardly any Koreans now who haven’t seen us on TV. As far as I can judge from meeting people on the street, everybody knows about us and our business. For example, quite recently we had a feature on KBS for almost an hour.
 △Lee: That was last September. It was almost three weeks of shooting.
 △Bin: They keep on broadcasting this program many times. Obviously, they found it interesting enough to invest money in. That was a big feature that really got us into the collective memory of the TV-watching community in Korea, which is 99 percent of the population, as you know. It’s amazing. You know, this kind of documentary isn’t really something many are especially interested in Korea, but still, the people we talk to seem to recognize everything they see on TV. Now everybody knows what we’re doing, when we got married, and why [laughs]. So, after the TV shoot, we developed our own story. We have an official version.
 -GN: What’s your expectation for the future?
 △Bin: Our time is running out, as everybody’s is. But our time maybe running out faster because we’re older. So, we’re actually more in the process of slowing down. One aspect of this is to find somebody to pass the business on to because our children will definitely not live here and don’t want to do candlemaking in the middle of nowhere.
 △Lee: When I was their age, I never dreamed of living here.
 △Bin: Even me. We have two daughters and one son. Two of them are living in Germany and one’s living in Los Angeles. Our children definitely won’t come here, I’m quite sure of it.
 △Lee: Maybe the last one, she isn’t married yet. Our youngest daughter, she is our adopted child.
 △Bin: Maybe. But our children will not coming here. I’m quite sure about it. Our son is an architect working in Berlin at a nice company now. Our youngest daughter is actually selling our soap, which we make now, too. She finished her master’s in business or marketing or finance. I forget [laughs]. She runs a start-up in Berlin selling our candles and some other cosmetics together with friends. They’re busy going from exhibition to exhibition showing the products and making sure they’re all in the lifestyle magazines for the ladies. All of our stuff is female-related on the customer site.
 At this time, Bin showed us photo documentation of his activities with Korean communities and environmental organizations, and took on a tour of his workshop.
 Written by Zico Mulia
 Photographed by Lorryn Smit
 Zico is a master student in Chonnam National University, majoring in interdisciplinary NGO Studies. Hailing from Indonesia, he is also active as a human rights defender and pro-democracy activist. Zico likes to read, listen to music, sports and traveling.
 *This article was originally published in Gwangju News April 2018 issue.
 Gwangju News is the first public English monthly magazine in Korea, first published in 2001 by Gwangju International Center. Each monthly issue covers local and regional issues, with a focus on the stories and activities of the international residents and communities. Read our magazine online at:

 현대시대 한국의 최초 밀랍초 제조가<2>

  독일 태생이자 ‘더크 퓌엔들링’이라는 본명을 가진 빈 씨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광주뉴스 사진 편집자인 ‘로린 스미트’와 함께 그의 집에 방문하여 인터뷰를 하였습니다. 그의 집과 작업실은 광주 근교인 담양군의 아름다운 산속에 있습니다. 광주에서 대략 한 시간 거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담양의 아름다운 호수와 초록으로 물든 산속의 조용함을 즐기면서 갔습니다.
 인터뷰를 하는 동안, 빈 씨의 아내이자 작업 파트너인 이영희 씨도 함께 했습니다. 그들과 인터뷰는 그들의 환대와 집의 평화로운 분위기 덕분에 따뜻하고 편안했습니다. 다음은 인터뷰 내용입니다.
 -GN: 초 만들기를 배우고 싶은 사람을 위한 교실이 있나요?
 △빈 씨: 네, 있어요. 그런데 정기적으로는 아니죠. 사람들이 우리에게 강습을 받으러 와요. 예를 들어서 여름에는 전 밖에서 가르쳐요. 그것을 위해서는 10명 이상이 사람들이 있어야 해요. 사실 적어도 그 정도는 있어야 해요. 때때로 우리는 30명부터 50명, 심지어 100명 이상이 있기도 해요. 그건 약간의 예외이긴 하지만, 다 가능해요. 다양한 수업들을 해 봤어요. 학교와 유치원부터 당연히, 성인을 위한 체험까지요. 우리는 심지어 환경 관련 기관을 위해서도 체험을 해요. 또한, 다른 기관들은 중소기업협회의 공무원 교육 센터에서 수업을 해달라고 부탁해요.
 하지만 그것이 저희의 주수입원이 아니에요. 사실 우리에겐 내키지 않은 일이죠(웃음). 할일도 많고 준비가 많이 필요하지만, 어쩔 수 없이 하는 거죠.
 -GN: 여기에 양봉장이 있나요?
 △빈 씨: 아니요, 저희는 벌을 키우지 않아요. 밀랍이 많이 필요하기 때문에, 말이 안 되겠죠? 벌집 한 개당 밀납이 1 킬로그램도 안 나와요. 일 년에 3톤에서 4톤을 사용하죠. 사실 저희를 위해 일하는 벌들이 많아요(웃음). 저희가 벌을 직접 키우는 대신, 전국의 양봉업자들에게 밀랍을 사죠. 그들은 밀랍을 미리 녹여서 큰 덩어리로 주고, 우리는 그것을 좀더 손질하죠. 나중에 우리는 전국 양봉협회와 일할 거예요.
 -GN: 한국 외에 다른 나라에도 팔고 있나요?
 △빈 씨: 아니요. 가끔씩 홍콩의 한국 공예품 관계자로부터 연락이 와요. 그들이 최근에 저희 초를 팔기 시작했는데, 자세히는 잘 모르겠어요. 최근에 부활절 초를 중국과 미국에 보냈어요. 그런데, 사실은 중국과 미국에서 선교 활동하는 한국인 수녀에게 보낸 것이었죠(웃음).
 -GN: 괜찮으시다면, 일 년 매출이 어떻게 되나요?
 △빈 씨: 그건 사장님에게 물어봐야겠는데요?
 △이영희 씨(빈 씨 아내): 2억 원이요.
 △빈 씨: 이익이 아니라 매출으로 2억 원이에요. 그래서 아마도 연매출 200,000달러 정도 될 거에요. 이익은 아마도 매출의 40-50% 정도 될 거에요.
 -GN: 양초 공장에 직원이 몇명 정도 되나요?
 △빈 씨: 음, 우리는 정규 직원은 없어요. 우릴 위해 일하는 2, 3명의 젊은 학생들이 있어요. 학생들은 방학 때랑 주말에 와요. 추가적으로 직원이 한 명 더 있지만, 정규 직원은 아니죠. 정기적으로 일할 사람을 고용한다면, 지속적으로 일해야 할 거에요. 요즘 한국 임금이 올라서 많이 지불해야 하기 때문이죠. 최저임금제와 보험료 때문에 저희에게 부담이 될 수 있어요. 현재 난감한 상황에 있어요. 사업이 너무 커져서 혼자서 하기는 어렵고, 또 정규 직원 몇 명을 고용하기에는 적어요.
 -GN: 한국에 외국인 단골고객이 있나요?
 △빈 씨: 아니요. 홈페이지가 주로 한국어로 되어 있어요. 기본 정보와 전화번호만 영어로 제공되고 있어요.
 △이영희 씨: 현재 저희 목표 고객이 아니예요.
 △빈 씨: 홍보를 더 할 수 있었어요. 하지만 우리가 사업을 확장하기에는 이미 꽤 바쁜 상태죠. 여러 방송사들이 자주 저희를 방문하는 덕분에 홍보와 광고를 간접적으로 하고 있어요. 이제 TV에서 저희를 못 본 한국인들은 별로 없을 거에요.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통해서 판단해 보면, 저희와 저희 사업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어요. 예를 들어서 최근에 약 한 시간동안 KBS에 출연한 적이 있어요.
 △이영희 씨: 그건 작년 9월이었어요. 거의 3주 동안 촬영했어요.
 △빈: 그들은 이 프로그램을 계속 방영했어요. 그들도 확실히 돈을 투자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 것이죠. 이 출연으로 한국 TV 시청자 기억에 깊게 남게 되었죠. 아시겠지만, 한국에서 TV를 보는 사람이 전체 인구의 99% 이상이에요. 놀랍죠. 사실, 한국인들이 이런 종류의 다큐멘터리에 많은 관심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우리와 이야기 나눈 사람들은 TV에서 나온 것 모두를 알아보는 것 같아요. 이제 사람들은 우리가 무슨 일을 하는지, 우리가 언제 결혼했는지, 왜 그랬는지도 알아요(웃음). 그래서 TV 촬영 후, 우리는 우리만의 이야기를 만들었어요. 공식 버전이 있어요.
 -GN: 향후 어떤 일을 기대하고 있나요?
 △빈 씨: 다른 사람들처럼, 저희의 시간은 정말 빨리 가고 있어요. 하지만 우리는 나이가 들었기 때문에 시간이 더 빨리 지나가고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우리는 사실 더욱 더 속도를 늦추고 있어요. 이것의 한 가지 측면은 우리의 사업을 물려줄 사람을 찾는 것이에요. 우리 자녀들은 당연히 이곳에 살지 않을 것이고, 인적이 드문 곳에서 양초 만들기를 하길 원하지 않기 때문이에요.
 △이영희 씨: 제가 걔들 나이였을 때 여기서 살 거라곤 꿈에도 몰랐어요.
 △빈 씨: 심지어 저도요. 저는 두 딸과 아들 하나가 있어요. 두 명은 독일에 살고 한명은 로스앤젤레스에서 살고 있어요. 우리 아이들은 절대 여기로 오지 않을걸요. 전 거의 확신해요.
 △이 씨: 막내는 올수도 있죠, 아직 결혼을 안했잖아요. 우리 막내딸은 우리가 입양한 아이에요.
 △빈 씨: 그럴 수도 있죠. 그런데 우리 아이들은 여기에 오지 않을 거예요. 전 확신해요.
 우리 아들은 베를린의 좋은 회사에서 일하는 건축가에요. 우리 막내딸은 사실 우리가 요즘 만들기 시작한 비누를 팔고 있어요. 그녀는 경영인지 마케팅인지 금융 관련 석사학위를 받았어요. 어떤 것인지는 까먹었어요(웃음). 그녀는 베를린에서 친구들과 함께 저희 양초와 다른 화장품들을 판매하기 시작했어요. 그들은 여성생활 잡지에 실린 제품들을 보여주면서 홍보하느라고 바빠요. 우리의 모든 상품은 여성과 관련이 있어요.
 이때, 빈 씨는 우리에게 한국인 공동체 및 환경단체들과 활동했던 그의 사진을 보여주셨고, 작업장도 둘러보도록 해주셨습니다.
 글=Zico Mulia
 사진=Lorryn Smit (광주뉴스 사진편집자)
 번역=유연우 (광주뉴스 자원활동가)
 지코는 전남대학교 석사과정 대학원생이고, 학제간 NGO연구를 전공하고 있다. 인도네시아에서 온 그는 인권 옹호자이자 민주주의 운동가이다. 지코는 책읽기, 음악 듣기, 스포츠와 여행을 좋아한다.
 *이 글은 광주뉴스 2018년 4월호에 실린 내용입니다.
 광주뉴스는 광주국제교류센터가 2001년부터 매달 발간하고 있는 한국 최초로 발간된 공식 영문 월간잡지이다. 매달 지역민과 지역의 이야기를 다뤄오고 있으며 특히 지역거주 외국인과 커뮤니티의 활동과 모습을 담고 있다. 온라인에서도 잡지를 볼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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