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찬곤말과세상]박노해와 고승하의 ‘고백’에 얽힌 사연

김찬곤 | 2018-06-27 06: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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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4년에 나온 박노해 시집 ‘노동의 새벽’을 읽었다. 표지 빛깔은 그대로인데 내지는 누렇게 바랬다. ‘바래다’란 말을 이렇게 딱 들어맞게 써 본 적이 거의 없는 것 같다. 기억도 나지 않는다. 요즘 세상에는 닳은 것을 쓰기는 하지만 색이 바랜 것은 웬만해서는 보기 힘들다.

 내가 읽은 시집은 1984년 초판본이다. 이때는 활판인쇄를 했던 때이다. 그래서 색은 바랬어도 인쇄발은 여전히 선명하다. 옛날 학생 때 읽었을 때는 모두 다 좋았다. 시가 길어도 좋았다. 그런데 이제는 모두 다 좋지는 않다. 그래도 ‘신혼 日記’ ‘포장마차’ ‘가리봉 시장’ ‘지문을 부른다’ ‘휴일특근’ ‘노동의 새벽’은 2018년 오늘 읽어도 감동이다. 이 시집이 나온 해가 1984년이니까 그의 나이 28살이다. 28살 청년이, 결혼 2년차 새 신랑이 세상에 처음 내놓은 시집은 지식인을 비롯해 노동자의 가슴을 후벼 팠다.

 경남 마산 고승하의 마음도 움직였다. 고승하는 1979년 33살 나이에 창원대학교 음악학과에 입학한다. 이때 그는 두 아이의 아버지였다. 1983년 학교를 졸업하고 남해상고와 마산여상에서 1989년까지 음악 교사로 일한다. 1984년, 그의 마음을 꽉 채운 두 사람이 있었는데, 바로 전태일과 박노해였다. 전태일은 1948년생 쥐띠로 그와 동갑이다. 전태일은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가슴속에는 언제나 불꽃으로 살아 있었다.

 그는 ‘노동의 새벽’ 시집 두 시에 곡을 붙인다. ‘노동의 새벽’과 ‘고백’이다. 그는 이무렵 ‘여공일기’와 ‘친구에게’도 작곡한다. 이 네 노래는 마산창원 지역 집회에서 시위대가 부르는 노래가 된다. 네 노래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노래가 ‘고백’이다. 이 노래는 ‘노동의 새벽’에 실려 있는 시 ‘아름다운 고백’에 곡을 붙인 것이다. 원래 시는 53행이나 되는 긴 시였다. 그는 이 긴 시를 단 여섯 줄로 줄여 곡을 붙인다.
 
 사람들은 날더러 신세 조졌다 한다
 동료들은 날보고 걱정된다고 한다
 사람들아 사람들아 나는 신세 조진 것 없네
 친구들아 너무 걱정 말라 이렇게 열심히 살아가지 않는가
 노동운동 하고 나서부터 참 삶이 무엇인지 알았네
 
 이 노래는 마산여상 교사로 일할 때 붙인 노래이다. 그는 노동자로 취직해 나가는 제자들을 생각하며 힘이 되어 주지는 못할망정 선물이라도 주자는 생각에 곡을 붙였다고 한다. 28살 혁명가가 쓴 시에 경남 마산의 서른일곱 음악교사가 곡을 붙인 것이다. 물론 악보에 작곡자 이름은 없었다.

김찬곤

광주대학교에서 글쓰기를 가르치고, 또 배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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