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과 삶]틈을 이용하는 동물들

최종욱 | 2020-05-11 06: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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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끼염소가 찾아낸 맞춤한 자리

 

염소가 쌍둥이 새끼를 낳았다. 그런데 그 중 한 마리가 3일 만에 죽고 말았다. 그 죽은 녀석은 태어난 직후부터 또 다른 녀석과는 완전히 대조적이었다. 어미젖을 스스로 찾아가 빨지도 못했고 그렇다고 어미가 적극적으로 챙겨주지도 않았다.

‘선택과 집중’이란 말을 살아있는 동물들에게 대입시키긴 좀 뭐하지만 아무튼 어미가 택한 것은 그것이었다. 남은 새끼 한 마리는 적극적으로 어미를 따라다녔고 큰 운동장을 함께 공유하는 다른 큰 동물들을 잘도 피해 다녔다.

 그 남은 새끼염소의 행동을 보면 때론 놀랄 때도 있다. 어느 날 아침 회진을 도는데 그 새끼염소가 작은 문턱 위에 올라앉아서 느긋이 졸고 있었다. 그 장소는 그야말로 안성맞춤 명당자리라 할 수 있었다.

그 시간대에 유일한 그늘이고, 염소 새끼 크기가 아니면 아무도 그 위에 올라앉을 수 없는 좁다란 곳이어서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는 아늑한 곳이었다. 둘 중 하나만 충족되어도 충분히 좋은 장소라 할 수 있는데 그 두 가지를 모두 만족시키니 새끼염소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그만의 공간이었던 것이다.
 
 ▲철창밖으로… 자유와 본능 사이 갈등
 
 오후가 돼 녀석이 또 어떻게 하고 있는지 자꾸 궁금해져서 다시 가 보았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도 아침의 그곳에 새끼 염소가 보이지 않았다.

‘이 녀석이 또 어디 갔나?’ 하고 한참을 두리번거렸더니 바로 그 문 틈새 안으로 들어가 있었다. 아침에도 그 문이 살짝 열려져 있는 것이 보였는데, 새끼염소는 앉아 쉬는 곳까지 햇빛이 들자 아예 그 안으로 들어간 것이었다. ‘그러면 그렇지!’ 하고 감탄사가 절로 튀어나왔다.

다른 사람들이야 대수롭지 않게 지나칠 수 있지만 모름지기 동물원 수의사 입장에선 동물 한 마리라도 자기 삶에 충실해 보일 때가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틈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이 틈이란 걸 이용할 줄 아는 동물들은 종을 망라하고 상당히 많다. 물새장 안에 흰 비둘기 무리가 사는데 어느 날 그물이 찢어져 작은 틈이 생겼다.

하지만 날 줄은 알아도 귀소본능이 강한 비둘기들은 좀처럼 도망가지 않는데 그 중 한 마리가 그 곳으로 조심스레 빠져나오는 걸 우연히 옥상에서 보게 되었다. 그 비둘기는 한 이틀을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났다.

그리고 찢어진 그물 지붕 위에서 며칠을 홀로 앉아있었다. ‘자유와 본능’사이에서 고민하는 게 역력해 보였다. 그러다 결국 나온 틈새를 통해 다시 집안으로 돌아왔다.

 원숭이 새끼 한 마리도 자꾸 철창 밖으로 손발을 내미는 장난을 하는가 싶더니 결국 그 틈으로 몸까지 빠져나오고 말았다. 처음에는 주변만 맴돌다 사람이 다가가면 화들짝 놀라 철창 안으로 내빼던 것이 이제 아예 뻔뻔스럽게 관람객들과 장난도 칠 줄 안다.

다른 원숭이 새끼들도 못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무리생활이 강한 원숭이 집단에서 집단의 금기에 따라 본능적으로 안 나오는 것이다. 그런 터부를 이 녀석은 과감히 극복해냈다. 하지만 그 보상은 엄청났다.

무한한 자유는 물론 주변의 모든 과자부스러기를 독차지했을 뿐 아니라 지루한 동물원에서 관람객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는 스타가 된 것이다.
 
 ▲‘틈’이 있어야 삶에도 여유가
 
 동물원의 동물은 아니지만 우리 사무실 처마 밑의 참새들도 옥상 지붕의 기왓장 틈새를 교묘히 이용하여 몇 백 마리가 아웅다웅 살아가고 있다.

때론 그 틈을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전투도 벌어지고 땅으로 낙하하는 전사자까지 나온다. 쥐나 바퀴벌레는 틈을 이용하는 특성 때문에 그 틈새에 퇴치 약을 제대로 가져다 놓으면 그들을 효과적으로 제압할 수 있다. 너구리나 오소리 같은 야생동물들은 항상 다니는 길(오솔길 - 오소리가 다니는 길)이나 틈새를 이용하기 때문에 그 길목에 덫을 놓아두면 잘 걸려든다.

 비단 이런 공간적인 틈만이 아니라 우리 마음에도 틈이 있어야 발전과 진보를 이루어 나갈 수 있다. 자신만이 가진 틈이 많아질수록 삶의 희열과 여유를 가질 수 있다. 혹시 지금의 인간세계를 거의 물샐 틈 없는 완벽한 세대라고 자화자찬할는지 모르겠지만, 천만에! 우린 유사 이래 인간적으로는 가장 커다란 구멍이 뚫린 시대를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최종욱 <우치동물원 수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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