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과 삶]쥐, 대지의 개척자이자 흙의 적장자

최종욱 | 2020-01-06 06: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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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어디에나 존재하고 모든 역경 이겨내


균형 잡힌 2020 경자년, 올해는 백 쥐의 해라고 한다. 하얀색은 상서로움, 쥐는 풍요, 다산 부와 인내의 상징이다. 그 해에 태어난 사람은 이런 특성을 타고 난다니, 혹시 윤회설 같은 걸까? 쥐가 한꺼번에 인간으로 환생하는 것일까? 십이지신을 보면 늘 이런 쓸데없는 의심이 들기도 하는 세초다.

 쥐를 좋아하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쥐의 대표는 우리가 흔히 보는 시궁쥐(집쥐), 곰쥐 같은 큰 쥐(rat)이기 때문이다. 대개의 예쁜 쥐들은 생쥐(mouse)라고 부르며 집이나 들판에 산다. 대개 쥐의 해에는 소수인 생쥐가 십이지의 주인공으로 그려지고 정작 다수이자 주역인 집쥐들은 나쁜 이미지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쥐라고 하면 이미지는 ‘마우스’를 머릿속에는 ‘래트’를 연상한다.

 사실 리얼 쥐인 쥐과의 동물을 조금 벗어나 이를 쥐목(설치류)으로까지 확장하여 보면 이들의 다양성은 실로 어마어마하다. 분류된 지구 포유류 종의 1/3을 차지할 정도이고 그 수는 헤아리기조차 불가능할 정도로 많다. 설치류는 위아래 앞 이빨이 두 개씩으로 계속 길어나는 동물들을 말한다. 그래서 무엇이든 계속 갉아먹고 있어야 생존한다.
 
▲지구 포유류 종의 1/3 차지
 
 대표적인 게 아마 비버일 것이다. 비버는 부지런히 나무를 갈아엎어 댐(집)을 쌓는 자연의 토목기사이다. 그래서 건축, 토목을 대표하는 상징 동물로 흔히 쓰인다. 유명한 가수 저스틴 비버도 비버를 모태로 하고 있다. 하늘을 나는 하늘다람쥐도 있다. 예쁘고 귀여운 청설모나 다람쥐도 이들이다.

 세상에서 가장 큰 쥐이지만 예쁘고 선한 카피바라, 북미 서부의 대평원에 살면서 오락실의 두더지처럼 얼굴을 계속 내미는 프레리독, 반려동물인 햄스터 역시도 이들 쥐에 속한다. 좀처럼 멸종하지 않고 지구에서 마지막까지 살아남을 가장 강력한 후보도 아마도 얘네들이다. 이들은 지구의 마지막 승자가 될 것이고 이들이 지구를 언제든 다시 일으켜 세울 것이다.

 쥐는 왠지 미워하면서도 친근한 동물이다. 그래서 수많은 이야기의 조연으로 등장한다. ‘신데렐라’에서 마차를 모는 마부들은 쥐가 변해서 만들어진다.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에서도 말하는 겨울잠 쥐가 나온다. 하멜의 ‘피리 부는 사나이’도 쥐를 부른다.

 이 피리 부는 사나이의 쥐는 나그네쥐 ‘레밍’이 모티브다. 레밍은 북극지방에 사는 작고 예쁜 모양의 쥐다. 환경이 좋으면 숫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 무리 대이동을 한다. 새로운 터전과 먹을거리를 찾아가기 위한 여행이지만 이들은 미친 듯이 앞만 보고 내달린다. 그러다 선두를 잘 못 세우면 절벽으로 이끌어 그대로 집단으로 낙상한다. 디즈니 영화 ‘하얀 광야’에서 이들의 이런 자살 장면을 보여주었지만 그게 일부 고의성으로 밝혀져 디즈니의 신뢰에 심각하게 멍이 가기도 했다.

새로운 길을 찾는 것은 이들처럼 위험하고 어렵지만 그 열매는 달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영화 ‘라따뚜이’에서는 절대미각을 지닌 시궁쥐가 나온다. 시궁쥐는 하수구 같은 더러운 곳에 산다. 이들이야말로 진정 음지에서 양지를 구축하는 동물이다. 그러니 음식 절대 감별사가 되는 것은 어쩌면 지저분한 곳에서 살아남기 위한 필수요건이다. 더러운 음식을 먹으면서도 병에 안 걸리고 산다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이런 특징을 기막히게 뽑아냈다.

그는 쥐라는 것 때문에 멸시당하고 어려움을 겪지만 결국 그의 능력을 인정받아 프랑스 최고 요리사가 된다. 연꽃은 진흙에서 피어나고, 능력은 결코 미와 비례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사람 밑에 사는 것 같지만굚 결국 위에…
 
 ‘이솝우화’의 시골 쥐와 도시 쥐에서 여러분은 어떤 쥐를 원하는가? 시골 쥐는 가난하지만 안전하고 편안하게 여생을 즐긴다. 도시 쥐는 화려하고 풍요롭지만 늘 불안하고 스트레스를 받는다. 전형적인 우리의 모습이다. 예전에는 도시 쥐를 대부분 원했지만 지금은 어떨지 모르겠다.

 쥐는 소의 머리위에 올라앉아, 죽어라고 선두로 뛰던 소가 결승선에서 잠시 숨을 고르자 그 순간 뛰어내려 선두를 독차지했다. 이런 뭔가 심오할 것 같은 십이지신도 쥐의 권모술수를 인정하다니! 정말 수단방법을 가리지 말고 잘 살아야 하는 건가? 만화 ‘마이티마우스’는 지구를 구하는 슈퍼쥐다.

한때 나도 그에게 열광했다. 그가 더럽고 추한 쥐라는 생각은 한 번도 안했다. 쥐는 세상 어디에나 존재하고 모든 역경을 이겨내며 잘 살고 있다.

모두의 희생양이지만 또한 대지의 개척자이자 진정한 흙의 적장자이다. 언뜻 사람 밑에 사는 것 같지만 결국 사람 위에 산다. 역시 마이티마우스!
최종욱 <우치동물원 수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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