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과 삶]‘주토피아’의 나무늘보

최종욱 | 2018-06-04 06: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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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림보 나무늘보의 반전 폭주
 정말 나무늘보가 이렇게 재밌게 나오는 영화가 또 있을까? 나무늘보, 그 느린 게 도대체 뭘 할 수 있다고! 그런데, 오! 너무 재밌다. 할리우드가 늘 상업성을 추구한다고 뭐라고들 하지만 이런 걸 자꾸 만들어내는 걸 보면 확실히 제작 능력과 더불어 감수성 내지 공감 수준이 보통 나라들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데 두손 두발 다 들고 만다. 나무늘보는 남미 아마존에만 사는 매우 특이한 동물이다. 워낙 움직이지 않으니 하루에 겨우 1m 정도만 이동한다고 한다. 온몸에 낀 이끼들과도 공생할 정도다. 박쥐도 아닌 것이 하루 종일 나무에 거꾸로 매달려 산다. 높은 나무위에 기어 올라가 말 그대로 겨우 숨쉬기 운동만 하고 사니 천적도 거의 없다. 슬로우 라이프는 굳이 파충류인 거북이나 연체동물인 달팽이에게까지 꼭 멀리 찾을 게 아니고 동급 포유류인 이들 나무늘보에게서 찾는 게 훨씬 더 빠를 것이다. 이 기회에 ‘에릭칼의 슬로우스’(sloth : 나무늘보, 게으름, 나태)라는 유명한 그림책도 일독을 권하고 싶다.
 주토피아는 비교적 최근(2016. 2. 미국 디즈니 , 리치무어, 바이로하워드)에 만든 애니메이션 영화이다. 이 영화에는 주인공 토끼 ‘주디’와 여우 ‘닉’을 비롯해, 시장인 사자, 경찰서장인 들소를 비롯해 여러 다종다양한 동물들이 쏟아져 나온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인 캐릭터가 차량국 직원으로 나오는 바로 나무늘보 ‘플레쉬’다. 느려터진 행정절차와 나무늘보의 그 느린 특징들을 서로 잘 대비시켜 우리가 99% 미소 지으며 공감할 수 있는 그림을 그려냈기 때문이다.
 
 ▲토끼·여우·사자 등 동물들 대거 등장
 
 주디는 따분한 시골생활에서 벗어나 늘 경찰이 되기를 꿈꾼다. 그리고 그냥 토끼답게 당근가게를 운영하라는 부모님의 만류를 뿌리치고 경찰학교에 들어간다. 그런데 그곳에는 코뿔소를 비롯해 곰·하마 같은 커다란 덩치 동물들이 주로 오는 곳이어서 작은 토끼 주디는 처음부터 왕따를 당하고 훈련도 너무 너무 힘에 겹다. 하지만 온갖 조롱을 이겨내고 뭐든지 두 배로 노력하여 드디어 경찰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한다. 경찰학교를 당당히 나와서 드디어 생전 처음 보는 대도시 ‘주토피아’로 경찰 생활을 시작하러 간다. 주토피아는 사자·여우같은 포식자와 양·가젤과 같은 피식자 들이 야생의 먹고 먹히는 관계를 벗어나 서로 각자의 일을 하며 평등하게 사는 동물들의 인간화된 낙원 같은 도시이다. 기후대에 따라, 사막, 툰드라, 열대우림 등이 도시 안에 구역별로 공존한다. 코끼리 같은 대형동물이 사는 곳부터 생쥐 같은 아주 조그마한 동물들을 위한 작은 도시도 있다. 그곳에는 집과 차량들이 주민들 사이즈에 맞게 아주 크거나 아주 조그맣다. 이 역동적인 도시에서 주디는 드디어 경찰 신고를 하려 하지만 코뿔소·곰 같은 덩치와 마초들이 차지하고 있는 주토피아 경찰서(ZPD)에서 주디에게 주어진 임무라곤 겨우 교통 단속뿐이다. 주디는 수치심을 누르고 더 열심히 주어진 임무에 임한다.
 그러다 거리에서 아기를 홀로 데리고 다니며 불쌍한 홀아비인 척 하는 여우인 닉을 돕게 된다. 하지만 닉은 이런 동정심을 역이용하는 사기꾼이었고 젖꼭지를 물고 있는 아기는 이미 다 큰 성인 사막여우였다. 아무튼 닉과는 이런 악연으로 관계가 시작된다. 경찰서는 한참 육식동물들 연쇄실종사건에 골머리를 썩고 있었는데 수달부인이 남편 워터톤의 실종신고를 하러온다. 주디는 우연히 옆에서 듣고 있다가 자기가 그 실종사건을 맡겠다고 나선다. 물론 들소 서장은 거절하려 하지만 마침 그 자리에 있던 시장의 비서이자 양인 ‘웨더’가 옆에서 거들어주어 드디어 이 큰 사건을 맡게 된다. 하지만 그녀에게 주어진 시간은 단 이틀뿐이었다. 사진을 보다가 워터톤과 여우 닉이 연결돼 있음을 우연히 알게 되고 닉을 반 협박 비슷하게 구슬러서 수사에 협조하게 만든다. 조사 끝에 수달이 탄 차량번호를 알아내고 나무늘보들이 근무하는 차량국으로 달려갔으나 느려터진 업무 탓에 하루 종일 걸려서 겨우 차적을 조회한 결과 암흑세계를 주무르고 있는 코끼리땃쥐 미스터빅의 차임을 밝혀낸다. 그리고 그 차를 몰래 조사하던 중 빅의 부하인 북극곰들에게 들켜 빅 앞으로 끌려간다굙 하지만 빅의 딸이 그 전날 주디가 오소리 도둑을 쫓다가 구해준 소녀 땃쥐 중 한 마리였다굙 그래서 오히려 그들은 빅 외동딸의 귀한 결혼식 손님자격으로 대접받게 된다. 거기서 주디는 빅의 운전사가 포식자로 돌변한 수달의 습격으로 다쳤다는걸 알아내고 운전사인 흑표범 집을 찾아가지만 갑자기 그 또한 포식자로 돌변하여 주디와 닉을 공격하고 둘은 가까스로 도망친다.
 
 ▲반짝 조연 나무늘보의 진한 여운
 
 CCTV를 통해 사라진 흑표를 늑대들이 끌고 가는 걸 추적하다 사자 시장이 시민들의 동요를 막기 위해 포식자로 돌변한 동물들을 하나씩 잡아다 격리시켜 놓았음을 알아내고 시장을 전격 체포한다. 범인은 잡혔지만 여전히 어떻게 그들이 포식자로 돌변했는지 사건의 실마리는 잡히지 않고 주디는 시민들이 포식자들을 기피하게 만들었다는 자책으로 스스로 낙향하여 당근을 판다. 그러다 시골에서 동물들이 먹으면 광폭하게 변하는 꽃을 발견하고 그것이 이 사건의 원인임을 발견하고 다시 주토피아 경찰로 복귀한다. 닉은 돌아온 주디와 함께 범인을 찾아 나선다굙 그리고 마침내 이 모든 게 시장비서인 웨더가 포식자와 피식자 사이를 이간질시켜 자신이 시장이 되기 위해 꾸민 모략임을 알게 된다굙 닉이 일부러 가짜 열매 총을 맞고 주디를 죽이는 척 하면서 밝혀낸 진실이다. 웨더가 체포되면서 다시 주토피아에 평화가 찾아오고 주디는 당당한 주토피아의 탑 경찰로서 우뚝 서게 된다.
 이렇게만 보면 여우와 토끼의 훈훈한 이야기 같지만 그럼 그냥 일반 애니메이션 영화와 하나 다를 게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나무늘보 ‘플레쉬’가 등장한다. 이 늘보는 자기의 적성에 맞는 일이라고 하면서 차량 등록 일을 하는데 급한 민원인들을 앞에 두고 먹을 것 다 먹고 할 것 다하면서 아주 천천히 일을 처리하는 공무원들을 나무늘보로 표현해 놓은 게 바로 이 영화의 핵심 카타르시스이다. 영화가 끝날 때까지 이 나무늘보의 슬로우모션 같은 느린 행동과 말, 몽롱한 눈빛이 계속 뇌리를 지배한다. 아니나 다를까 이 영화를 본 사람은 아주 잠깐 나오는 이 나무늘보가 무엇보다 인상 깊었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영화 말미에 주디와 경찰이 된 닉이 폭주족 단속을 나가는데 바로 이 폭주 스포츠카의 주인공이 이 느려터진 나무늘보라니! 결국 그를 히든카드로 인정할 수밖에 없는 깔끔한 반전 마무리였다. 만일 진짜 영화였다면 말단 조연에게 반해버린 관객들이 온갖 수고를 다한 주인공들에게 많이 미안해하여야 했을 것이다. 그리고 약육강식으로 흔히 표현되는 동물들의 세계를 평등을 이룬 이상 세계로 한번 상상해봄직한, 한 마디로 “오오~오오오오호!”로 시작하는 이 영화의 유명한 주제가(샤키라의 Try everything!)처럼 한바탕 신나는 축제처럼 정신없이 혼을 빼앗기고만 영화였다.
<최종욱 우치동물원 수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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