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대영 영화읽기]‘킬링 디어’

조대영 | 2018-07-20 06: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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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들의 이기심과 생존 욕구에 대한 탐구
 영화는 시작부터 관객들을 긴장시킨다. 슈베르트의 장엄한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팔딱거리는 심장을 오래 동안 보여주는 것이 이 영화의 첫 이미지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강렬하게 시작했던 영화는 이어지는 장면에서 의외의 전개를 펼친다. 수술을 마친 두 명의 의사가 손목시계의 방수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복도를 걷는 장면을 연출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장면들에서는 의사 중 한 명인 스티븐(콜린 파렐)이 소년 마틴(베리 케오간)을 만나 선물을 주고 교외를 산책하는 등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해 궁금증을 유발시킨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초반에 종잡을 수 없는 전개를 펼치고 있다는 말이다. 그렇게 영화는 삼분의 일 정도의 지점에서 본론으로 진입한다.

 그리스는 신화의 나라다. 이곳에서 나고 자란 요르고스 란티모스는 자신의 신작을 신화를 빌려다가 현대의 이야기로 각색한다. 신화 속의 아가멤논은 실수로 전령의 여신 아르테미스의 사슴을 쏘아죽여 저주를 받는다. 이 저주를 풀기 위해 아가멤논은 자신의 딸을 제물로 바친다. 영화 속에서 스티븐(콜린 파렐)은 외과의사다. 스티븐 역시 실수로 환자를 죽여 저주를 받게 된다. 저주의 발원지는 마틴이다. 마틴은 스티븐이 죽인 환자의 아들이다.

 이 영화가 흥미로운 것은, 마틴이 신화 속의 신처럼 저주를 내릴 수 있다고 설정하고 이야기를 전개시킨다는 점이다. 비현실적인 설정과 마틴의 초월적인 힘을 구태여 설명하지 않고 영화는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렇게 마틴은 스티븐의 아들인 밥의 하체를 마비시키는 것을 시작으로 저주에 발동을 걸고, 가족을 구하려면 가족 중 한 명을 희생시키라고 요구한다. 그러나 스티븐은 과학을 신봉하는 의사로서 마틴의 이야기를 믿으려하지 않는다. 그러나 아들 밥이 걸을 수 없는 처지에 놓이고, 딸인 킴 역시 하반신마비가 오자 스티븐은 마틴의 저주를 실감하며 이를 받아들인다.

 이렇듯 요르고스 란티모스는 두 눈 딱 감고 도저히 믿기지 않는 이야기를 천연덕스럽게 펼쳐놓는다. 이렇게 초현실적인 이야기가 그럴듯하게 펼쳐질 수 있었던 것은,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연출력과 마틴 역을 맡은 베리 케오간의 연기력 덕택이다.

 ‘킬링 디어’의 카메라 앵글과 움직임은 범상치 않다. 카메라는 높거나 낮은 곳에서 불안하게 인물을 포착하고, 슬로우모션 효과를 주는 등 인물들은 물론 그들이 배회하는 공간이 낯설게 보이도록 했다. 전체적으로 이 영화 속의 미장센은 몽환적이다. 그리고 음악의 사용 역시 불협화음과 날카로운 사운드로 관객의 신경을 자극한다. ‘킬링 디어’는 인물들의 뒤틀리고 일그러진 감정들을 표현하기 위해 부러 몽환의 영화형식을 관철시키는 것이다.

 여기에다 베리 케오간이 분한 마틴은 무표정한 얼굴로 일관하며 감정이 실리지 않은 대사를 기계적으로 내뱉는 등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묘한 카리스마로 신탁의 대리자로 화한다.

 이렇듯 묘한 긴장감을 형성하고 있는 이 영화는, 저주의 게임을 통해 인간을 실험하고 있기도 하다. 마틴의 저주가 얄궂은 것은, 마틴의 아버지를 실수로 죽게 했던 스티븐이 직접 저주를 받는 것이 아니라, 그의 가족 중 한 명이 죽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아들과 딸 그리고 아내인 애나(니콜 키드먼)는 제사장이 된 스티븐의 눈치를 살펴야 한다. 바로 이 때 인간들의 밑바닥 본성이 드러난다. 희생양이 되지 않기 위해 서로 경쟁하듯이 스티븐의 비위를 맞추는 그들의 모습은 어딘지 씁쓸하다.

 이런 이유로, 애나는 자식은 시험관 아기로 또 낳을 수 있다는 말을 남편에게 흘리고, 킴은 자신이 희생하겠다고 거짓말을 늘어놓으며, 아버지의 말을 평소 듣지 않았던 밥은 아버지처럼 심장 전문의가 되겠다고 아부하는 것이다.

 이렇듯, 요르고스 란티모스는 신화 속의 희생제의에는 관심이 없다. 다만, 인간들의 이기심과 생존 욕구를 탐구하고 싶었던 것이다.
조대영 <영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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