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이 마을로 저 마을로 밤질을 더듬고 댕갰제”

| 2020-04-29 06:05:02

원래대로크게보기

당신꽃 필 무렵
무안 어매들의 삶이야기 모음집
이백임, 진정순

 <이 세상에서 제일 세고, 제일 강하고, 제일 훌륭하고, 제일 장한, 인생의 그 숱하고도 얄궂은 고비들을 넘어 매일 ‘나의 기적’을 쓰고 있는 장한 당신을 응원합니다. 이제는 당신꽃 필 무렵!>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의 마지막회에 붙은 헌사다.
 “왜 나를 숭글 디가 없어 여기다가 숭궈 놨나” 싶은 돌밭에서 스스로 일어나 꽃이 된 어매들한테도 바치고 싶다.
 무안여성농어업인센터에서 한글을 배우는 어매들의 삶의 이야기를 옮겨 쓴 모음집 《시방은 암것도 안 무솨, 글자를 안께!》. 글자를 알기 전에도 자식들을 위해서라면 ‘암것도 안 무솨’라는 불굴의 정신으로 살아왔고, 호강질(길)은 몰르고 고생질(길)로만 건너오면서도 발 디딘 자리에서 한사코 꽃을 피워내며, 가난하면서도 각박하지 않았고, 항꾼에 나누고 퍼주는 버르쟁이를 고치지 못한 어매들의 이야기다.
 강맹순 강영희 강정례 김고만 김단례 김연례 김옥금 김정순 김포접 김화엽 노정임 박삼녀 박은심 안덕심 안미순 유숙희 윤명애 윤연임 이경자 이백임 이삼임 이윤심 이현임 임춘금 전덕례 전정순 정광순 정매신 정정례 정춘심 주순례 최단임 최순례 최영자 김귀심 김옥자 김옥희 김순자 배대례 신금자.
 땡볕과 폭우와 거센 바람 속을 지나온 생애의 시간 속에서 핀 당신꽃들의 말씀을 새긴다.
---------------------------------------------------------
“이 마을로 저 마을로 밤질을 더듬고 댕갰제”
이백임

 <우리 집 앞에는 대섬이 있다/ 올 가뭄에도 소나무는/ 파란 색깔로 푸르기만 하다/ 바닷물이 가득 차서/ 출렁거려도 아름답다/ 파도는 급하게 달려왔다/ 흔적없이 사라져 버린다/ 한눈에 보이는 대섬을/ 나는 하루도/ 바라보지 않는 날이 없건만/ 저 섬은 이런 나의 마음을/ 알고나 있는지 모르겠다>

 대섬이 한눈에 바라다보이는 집에 사는 이백임(80·현경면 송정리 송정마을) 어매. “이런 나의 마음을 알고나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할 대상이 대섬뿐일까. 울다가 눈물 개다, 내 설움을 혼자 다독이며 한세상 헤쳐왔다.

“전답이 오늘 밤 넘어가냐 어쩌냐 애를 태와”

 “우리 집 남자가 노름을 많이 해서 고생했제. 몇날 메칠이고 노름을 하니라고 집에도 안들어오는 날이 많앴어. 전답이 오늘 밤 넘어가냐 어쩌냐 날마다 애를 태와. 밤이문 우리 아들을 걸리고 맨나 찾으러 댕갰어. 어디가 있을지도 모름서도 이 마을로 저 마을로 밤질(길)을 더듬고 댕갰제. 후라시는 꼭 들고 댕갰어. 질 비출라는 목적도 있는디 밤인께 못된 남자를 만나문 후라시로 때려불라고. 꼭 우리 집 남자를 찾을 것이라고 생각하든 안했어. 속이 폭폭한께 집에가 가만 있을 수가 없었든 것이제.”

 정처없는 밤길, 캄캄한 인생길이었다.

 “집앞에 밭도 하랫저닉에 넘어가불었어. 그 밭이 한마당이나 다름없는 땅이여. 내가 짓고 살던 땅인디 눈앞에 뻔히보인디 쳐다보문 가심이 아팠제.”
[사진0]
 작심하고 보따리를 싼 적도 있었다.

 “근디 애린 것들이 눈에 볼펴서 어찌케 집을 나설 수가 있가니. 올망졸망 애린 것들 앞세우고 농사를 지었제.”

 “놈마칠로 못 갈친 것이 젤로 미안하제”

 어매는 딸을 졸졸이 넷 낳고 나서 아들 셋을 낳았다.

 “넷째 딸을 낳고 본께 들에 보리가 누렇게 익었더라고. 낫 들고 나가서 보리를 비었제. 딸만 내리 낳은 죄로 사흘째 인나서 보리를 비었당께.”

 돌아보면, ‘또 딸’이라고 스스로 서운했던 그 맘이 막내딸한테 더 미안스럽노라는 어매.

 “킬수록 막내딸이 질로 이쁘더만. 놈마칠로(같이) 못 갈친 것이 젤로 미안하제. 우리 애기들이 미련헌 애기들은 없는디 돈이 없어서 많이 못 갈쳤어. 우리 집 남자가 노름해서 많이 못 갤쳤다 생각하문 그러코 미웁게 보이더랑께.”

 남편을 두고 얼마 전엔 이런 글을 썼다.

 <나는 남화씨를 남편이라고 만나서 육십 년을 살고 있다. 좋울 때도 있었고 나뿔 때도 있지만 그래도 이해하고 가치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살아나왔다…>

 ‘남편이라고 만나서’와 ‘그래도’ 사이에 흑백사진속 자태고운 각시가 할매 된 세월이 놓여 있다.

 “나 같은 사람 만났응께 남자도 이만치 살제. 남자가 얼마 전에 입이 돌아가는 병이 와서 병원에 입원한 내내 밥을해서 버스 타고 이고들고 댕갰어. 인자 꼭 애기 같애. 뭣을 혼차 알아서 허는 법이 없어. 경운기를 몰 때도 맨날 빠져서 동네서 질로 잘 빠지는 사람이여.”
[사진1]
 마음속에 할 말이 꽉 찬 어매는 날마다 일기를 쓴다. 일기쓰기에 얼마나 정성을 기울이는지 달력 뒷장에 먼저 연습으로 써보고 나서 공책에다 한 자 한 자 옮긴다.

 <날씨가 너무나 비가 많이 오고 있다. 햇두폰 내서 맷새시가 찌꺼져인고 태풍비가 왔다고 강물레 피에가 업도록 대비하라고 하였다. 밤새 내리는 비가 소리업시 레너 많는 비가 와서 바람업시 오면는 조겠는대 비가 오라고 하링까 자주 오고 있네>

 햇두폰 맷새시 강물레 레너 하링까…. 다 알아먹겠는데 어매는 “암도 못알아봐. 다 틀리게 써서. 나만 알아봐”라고 수줍게 말한다.

 “공부를 하고자파서 센터(무안여성농어업인센터)로 내발로 걸어갔제. 놈들은 하다 말기도 한디 나는 꾸준히 댕개.”

 평생 흙밭에 엎드려 살아온 할매의 일기는 농사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큰바람 불고 비라도 많이 올라치면 농사 어찌꼬 하는 걱정을 여전히 내려놓지 못하고 산다.

 “친정엄마는 야든에 돌아가셨어. 내가 올해 야든이여, 그래서 내가 엄마 탁했으문 올해 죽겄다 그랬는디 안즉 살고 있네. 나는 죽어서 엄마 곁으로 찾아간다, 고 일기도 썼어.”

“내가 서룹게 살았어도 어둔 성질이 아녀”
전정순

 “두 살 묵어서 어매를 잃고 어찌고 살았겄소”라고 말하는 전정순(80·해제면 만풍리 노문마을) 어매.

 “젖배를 많이 곯았제. 할무니가 쌀을 깨물어서 내 입에 너줌서 길렀다고 그래. 두 살 때 엄마가 집을 나가불었어. 아부지가 술을 너모너모 많이 자시니까 외할무니가 빼다가 딴 집에 여와불었어. 오빠 하나 언니 하나에 나꺼정 셋을 놔두고 나간 것이제.”

 두 살 때부터 어매의 ‘설운 시상’은 시작됐다.

 “나는 비만 오문 할무니 옷을 잡고 울었어. 어매 없이 살았는디 울라문 꼭 ‘어매 어매’ 하고 울었다 그래. 난중에 아부지가 새로 어매를 얻었어. 그래도 새어매가 나를 많이 생각해줬어. 장에서 묵을 것 한 가지를 사와도 내 몫이라고 꼭 한쪽에 챙개뒀다가 주고 그랬어.”

 집나간 어머니를 훗날 찾아간 적이 있었다.

 “언니랑 같이 찾아갔제. 어매는 거그서도 없이 살대. 가난하게 살아. 왜 나를 놔두고 갔냐고 그 말이 몬자 나왔제. 어매가 하도 못살겄응께 너를 놔두고 왔다고 그라더만. 헤어질 때 어매가 언니한테는 보리쌀을 주고 나한테는 명지베를 줬어. 그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여. 어매가 그 뒤로 바로 돌아가셔붓서. 환갑을 넘고 막바로 돌아가셔불었어. 나를 한번도 더 안보고 갔는갑다, 인자 나를 영영 놔두고 갔는갑다 그랬제.”
[사진2]
 원망은 세월속에 잦아들었다. 이제 애달픔만 희미하게 남았다.

“애기들을 놔두고 보따리 못 싸겄더라고”

 “나는 한 동네서 데려갈라는 디가 많앴어. 정순이는 바느질도 잘하고 얌잔한께 어디 가든 잘 살 것이라고 며느리 삼을라는 디가 많앴제. 무지양단에다 싸간다고 그랬어. 최고 좋다는 양단이여.”

 어매는 열아홉에 시집와서 아들 넷 딸 둘을 낳았다.

 “갈치고 믹일 것이 없응께 나는 애기들을 안 날라고 했어. 안 낳는다고 했어도 많이 낳게 되었어. 못 살 것 같더만 놈들보다 더 많이 낳았어. 그렁께 진짜로 우리 집 남자하고 의좋게 살았더라문 겁나게 낳을 뻔했제.”

 남편은 술보였다.

 “어찌나 술만 묵던지 살 마음이 없었어. 내 속이 다 썩어 불었어. 나는 그 꼴 보고 술이 질려서 일모금도 안해. 남편을 마주보기 싫은께 등돌리고 맨나 농을 쳐다보고 잤제. 긍께 남편이 어느 날은 오늘 저닉에는 내가 여그 보고 잘라네 대관절 여그가 뭣이 있능가 그러더랑께.”

 보따리 싸서 집을 나가려 한 적도 여러 번이었다.

 “하다 힘들게 살아서 몇번을 애기들 놔두고 집을 나갈라고도 했는디 차마 그럴 수는 없더만. 날 버리고 간 어매가 말할 수가 없이 야속한 세월을 내가 살았는디, 왜 날 놔두고 가불었으까 그 생각을 한참 크도록 하고 살았는디. 그 생각을 한께 애기들을 놔두고 못 나오겄더라고.”

 어매는 양은솥이며 양푼을 목포에서 받아갖고 포강포강이고 동네동네 다니며 팔았다. 나중엔 젓갈장사도 했다.

 “새복이문 애기들 밥해놓고 밭일해 놓고 도시락도 싸놓고 가. 하래 왼종일 온동네 돌아댕김서 폴아. 다 폴아야만 해름전에 갈 수 있응께. 애기들 저닉밥 줘야 한께 맘도 걸음도 항시 바빠. 돈 대신 받은 곡석을 이고 캄캄해진 길을 담박칠쳐서 오제. 그때 하다 많이 걸어갖고 인자 발을 잘 못써.”

 어매의 발은 한쪽 뼈가 툭 불거졌다.

 “새복에 다라이 동우를 찌고 아직 깜깜한 길을 걸어서 도리포까지 가. 뿌시럭거리는 소리가 나문 같이 가던 동무가 ‘아이고 무솨라’ 그래. 속으로는 나도 무솨. 그래도 ‘뭣이 무솨’ 그러고 안 무서운 칙끼 없는 용기를 냄서 살아왔어.”

 낯모르는 동네를 많이도 돌아다녔다.

 “나는 많썩 줘불어. 빨리 집에 올라고. 얼른 폴고 집에 얼른 오는 것이 꿈인께 딴생각이 없어. 낮밥은 굶을 때도 많고 앵기문 얻어묵고. 그때 밥 한숟구락이라도 준 사람들은 너모너모 고맙제. 젊은 각시가 장사왔다고 일부러 갈아주는 사람도 있고, 고마운 사람들이 많앴어.”

 길위에 고생만 있지는 않았다. 밥 한술 나누는 마음, 갈아주는 마음이 있었다. 그 마음들 덕에 힘들고 험한 굽이굽이를 헤쳐나올 수 있었다.

 “그때는 고된 일을 된지도 어짠지도 모르고 달려들어서 했어. 내가 못배와논께 애기들을 어찌케든 믹이고 갈칠라고 놈의 일도 하고 내 일도 하고. 애기들 크는 재미 먹는 재미, 어매는 그것으로 살아.”

“노래라도 부르문 내 속이 훤하제”

 어매는 노래도 잘하고 장구도 잘 치고 흥이 많다.

 “내가 살아온 시상을 생각하문 흥이 있을 까닭이 없는디 내가 무단시 노래를 잘 해. 긍께 논밭에 일하러 가도 나한테는 일하지 말고 노래만 하라고 사람들이 성화여. 장구를 쳐도 내가 쳐야 재밌다그래. 무안노래자랑에 나가서 꽃병도 타고 그랬어.”

 어매 가슴 속에는 노래가 꽉 찼다.

 “저 달아 보아라 본 대로 일러라…이내 몸을 결단짓고 갈란다…살다살다 못살겄으문 푸르난강 깊은물에 이내몸을 던져라….”

 그런 노래들에 마음을 의탁하노라면 또 가만 살아갈 힘이 났다.

 “노래라도 부르문 내 속이 훤하제. 밭일 함서도 혼자 불러. 내가 살아온 세월을 생각하문 구석참을 차지하고 살 것인디 내가 서룹게 살았어도 어둔 성질이 아녀.”

 어매의 별명은 ‘해당화’.

 “내가 활짝활짝 잘 웃는다고 놈들이 그러코 불러싸.”

 “해당화 꽃 한송이를 아다담싸 껑꺼서 정든님 머리에 꽂아나주세….”
꽃 꽂아줄 정든님은 어디에 있나. 남편은 십 년 전에 먼저먼길 가셨다.
“남편도 님은 님인디, 나는 자식들이 더 큰 님이제. 애기들 정으로 살아.”
글=남신희 ‘전라도닷컴’ 기자·사진=박갑철 ‘전라도닷컴’ 기자 

※이 원고는 월간 ‘전라도닷컴’(062-654-9085)에도 게재됐습니다.
< Copyrights ⓒ 광주드림&gjdream.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목록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