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의 눈, 청년의 인문학] 로베르토 볼라뇨 ‘경찰 쥐’ &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김연우 | 2020-05-11 06: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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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공 가르는 동전, 버틸 수 없는 신념
무너진 신념 위에 세울 또 다른 확신

▲쥐는 쥐를 죽이지 않을까?

엘리사는 목이 찢겨 있었다. 깡통 안에서 새끼 쥐의 시체도 발견했다. 주변을 둘러봤지만 포식자의 흔적이라고는 찾을 수 없었다. 아이는 굶어 죽었다. 살해자는 아이를 납치한 후 인적이 드문 통로를 통해 죽은 하수도에 들어갔을 것이다. 그곳에 아이를 가만히 놓아두고 죽을 때까지 기다렸을 터다. 말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자연사를 기다린 것이다. 내가 검시관에게 말했다.
“내 생각에 이 상처들은 쥐가 낸 것입니다.”
“하지만 쥐는 쥐를 죽이지 않네.”
“이건 그렇습니다.”
“꿈에서 그만 깨시게, 페페. 현실적인 일도 어지간히 복잡한데 비현실적인 일을 덧붙이면 현실까지 흐트러지네. 삶이라는 게 짧지 않은가, 불행히도 우리 삶이 그러하고, 그러니 질서를 향해 가야 한다는 것이네. 무질서가 아니라 말일세. 게다가 상상의 무질서라면 더더욱 아니 될 말이고.”
- 로베르토 볼라뇨, <경찰 쥐>

‘쥐는 쥐를 죽이지 않는다.’ 모든 쥐들이 이렇게 믿으며 사회를 구성한다. 경찰 쥐 페페는 오늘도 이 하수구 저 하수구 통통 튀어 다니며 사회구성원들의 안전과 평화를 위해 복무한다. 그러던 어느 날 의문의 살인사건이 벌어진다. 날카로운 것에 목이 찔려 죽은 어미와, 재갈을 문채 아사한 아기. 괴상한 살인사건의 진실을 파헤치고 정의를 바로세우기 위해 페페는 범인을 좇기 시작한다. 그러나 여정의 끝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는 불편하고 슬픈 진실은, 그와 구성원들의 믿음은 그들 자신에 대한 몰이해일 뿐이었다는 것이었다.

수다를 떨며 종종 ‘갈수록 세상이 미쳐간다’고 지껄인다. 글쎄, 살인사건 뉴스 같은 걸 보며 하는 말이라면 그건 착각이다. 인간은 인간을 많이 죽였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치매 걸린 노인처럼 툭하면 ‘세상 말세’라 한다. 모종의 믿음일까? 나를 둘러싼 모든 게 정상일 거라는 믿음. 그러나 그 정상이 무엇인지 막상 말을 하려면 모호하다. 어쨌든 살인은 계속 새로운 옷을 입고 있고, 적응하긴 참 어렵다. 이해할 수 없기에 가치판단도 내릴 수 없는 것들이 늘어갈 때 사람은 늙는구나 느낀다. 앞이 어두울수록 향하는 저곳이 말세 같고, 발길은 불안으로 방황한다.

쥐는 쥐를 죽이지 않을지 모르나, 살인은 인류와 함께 자란 사생아. 살인의 역사가 인류의 역사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동족을 죽이는 일에 우린 비교적 덤덤하다. 이 무심함은 생존세계와 전쟁터에서 두 눈으로 생생히 체험하고 목격하던 살육이 TV 속으로 들어간 것도 한몫 했을 것이다. 그러나 안에서든 밖에서든 살인의 형태와 이유는 갈수록 기상천외해지긴 한다. 이해해야 할까, 철창부터 튼튼히 해야 할까. 살려면 뭐든 해야겠지만 결국 왜 이렇게 됐는지 이해하고 싶다. 단지 잠자던 살육의 본능일까? 아니면 괴물처럼 창궐한 새로운 바이러스라도?

▲노인, 규칙이 진리라고 믿었던 이들

“앞면과 뒷면 중 하나 고르시오.”
“뭘 걸고 하는지는 알아야죠.”
“이미 걸었소. 댁 목숨을 걸었지. 모르고 있을 뿐.”
“이기면 뭘 얻는지 알고 싶소.”
“뭐든지.”
-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中 살인마와 슈퍼마켓 주인의 대화

거칠고 막막한 황야에서 사건은 시작된다. 르웰린은 우연히 총격전이 벌어진 끔찍한 현장에서 200만 달러가 든 가방을 손에 넣는다. 의뢰를 받은 살인마 인톤 시거가 돈가방을 쫓고, 보안관 벨 또한 이들의 뒤를 좇기 시작한다. 황야를 묵묵히 돌며 일 해온 벨은 숨 막히는 추격전과 피 튀기는 살인극에 아연실색한다. 겨우 돈 때문에 이 지랄이라니. 게다가 이 끔찍한 살육과 시체들은 또 뭐란 말인가. 그러나 누군가 회의감과 타성에 젖는 이 순간에도 살인마는 쉬지 않고 움직인다. 그는 슈퍼마켓 주인의 목숨을 동전에 걸고 있다.

노인은 무엇인가? 낡은 신념을 고수하는 사람이다. 사람은 믿음에 묶이면 늙는다. 예를 들면 게임판에서 어떤 규칙을 믿는 사람은, 그 규칙이 깨져버리는 순간 경기장 밖으로 내쳐지고 뒷방신세 되는 것이다. 노인은 규칙이 진리라고 믿었던 이들. 영원불멸할 줄 알았던 진리가 언제든 붕괴될 수 있는 규칙이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그는 절망에 빠진다. 그의 잘못이 아니다. 그럼에도 세상은 이미 그를 위한 세상이 아니다. 노인이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다가올 미래를 두려워하고, 변해버린 세상을 푸념하고, 지난 과거를 추억하는 것.

수없이 건축되고 무너지는 세상의 규칙들 속에서 단 하나 무너지지 않는 생사의 규칙, 그래 그 정도는 진리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두려워하고 푸념하고 추억하는 노인은 종종 그 진리의 탑을 바라본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언제나 고고히 서있는 탑을 바라보며 한없이 절망하던 때도 있었으나, 그 절망조차 시간을 타고 무심히 흘러갔다. 이제 그는 마지막 남은 하나의 선고를 조용히 기다린다. 그런데 그를 향해 오던 미래가 뜻밖의 기류를 탄다. 이상한 색채를 띤 불길한 희망이 싹튼다. 그것은 죽음을 초월하여 영원히 살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다.

▲육체의 살해, 정신의 불멸

드라마 ‘이어즈 & 이어즈’는 브렉시트 이후 세계의 격동과 함께 한 가족의 이야기를 빠르게 펼쳐간다. 2019년, 2029년, 2034년…. 해가 거듭될수록 사람들은 황금기가 끝났다는 것을 확신한다. 물가 폭등, 환경오염, 극우화…. 언제쯤 이놈의 세상 망하려나, 입버릇처럼 말해도 용케 버티지만. 중국 핵시설에 떨어진 미국의 폭격으로 종군기자 이디스가 피폭되고 시한부 인생 10년형을 선고받는다. 정치계에서는 아이큐테스트로 투표권을 주자는 미친 말을 하는 신 히틀러가 등장해 인기를 끈다. 와중에도 과학은 계속 발전한다. 어느 날 스티븐 딸 베서니가 데이터가 되겠다 선언한다. “또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거야?” 죽음 너머의 새로운 삶, 우리는 거기에 갈 수 있을까.

3D 이모티콘 뒤에 얼굴을 숨기는 딸의 고민이 무얼까. 베서니의 검색목록을 염탐하던 엄마아빠는 ‘트랜스’를 발견하고 안심한다. 그러나 트랜스젠더라 말하면 부둥켜안고 괜찮다 사랑한다 하려던 부모는 망연자실. ‘트랜스휴먼’이라니. 육체를 버리고 정신으로 영원히 살겠다고? “너 지금 자살하겠다는 거잖아!” 후손들은 멍청한 노파심이라 비웃을지 모르나, 지금은 눈앞에 앉은 가족의 생사가 달린 문제다. 이 기상천외한 선언에 부모는 당연히 소리 지를 수밖에. 딸의 몸이 하수구 속으로 사라지고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기계음에 ‘거기 정말 너니?’ 불안한 목소리로 묻고 싶지 않다. 그나저나 이 살육은 혹시, 동족을 죽이는 바이러스가 아닐까?

삶과 죽음에 대하여 인류가 아직까지 찾지 못한 답이 남아있으려나. 모든 답을 다 캐내버린 자는 자꾸만 회의적이다. “죽음을 넘어 살 수 있어. 육체를 죽이고 정신 자체가 된다면.” 그것이 가능할지 코웃음도 안날 오만인지 아무도 모르나 인간은 시도할 것이다. 아니 시도될 것이다. 이제 시도는 불가항력의 파도. 눈을 반짝이는 젊은이들, 고개를 젓는 노인들. 나는 아직까진 노인이다. 재밌는 비문이다. ‘아직까진 노인’이라. 과학이 아무리 발전해도 죽음을 초월하지는 못할 테지. 그러나 만약 가능하다면 불멸의 기회를 차버리는 꼬장꼬장한 늙은이는 멍청할 뿐.

동전을 든 살인마 앞에서 그럴듯한 답은 준비되어 있지 않다. 할 수 있는 일은 공기를 가르며 날아오르는 동전에 생사를 거는 것 뿐이다.

▲믿음은 배신당한다

“밤에 말을 타고 산길을 달렸어. 좁은 오솔길 말이야. 춥고 땅엔 눈까지 쌓였는데 아버지가 날 앞질러 가시는 거야. 담요를 두른 채 머릴 숙이고 계시더군. 지나가실 때 횃불 드신 걸 봤지. 그땐 뿔 속에 불을 밝히고 다녔잖아. 불빛에 뿔이 비치는데 달빛 같았어. 꿈이지만 먼저 서둘러 가셔선 어둡고 추운 곳에 불을 밝히고 계실 거란 걸 알았어. 내가 도착하면 날 맞으시려고.”
-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中 보안관 벨의 꿈 이야기

인간의 불멸 방식은 커넥팅이다. 인류는 계승이라는 방법으로 불멸해왔다. 그러나 모순이다. 인류의 불멸이지 개인의 불멸은 아니니. 그리고 애석하게도 이대로라면 인류는 종의 불멸도 보장하기 힘들어 보인다. 그럴수록 불멸에 대한 미친 욕망의 바퀴도 빠르게 판도라의 상자에 다가갈 것이다. 태초에 시작된 신체와 정신의 커넥팅, 그것의 분리를 통한 영생. 받아들일 수 있는가? 어차피 누가 동의하든 안하든 상자는 열린다. 그러나 당신의 의견이 중요하다. 이건 당신의 생사가 달린 문제니까. 존재를 걸고 하는 내기, 동전을 던질 텐가?

인간은 답을 커넥팅에서 찾으려 한다. 가족, 사랑, 앞서가는 연장자의 뒤통수. 그러나 본디 앞서가는 이들은 젊은이들이다. 연장자란 앞서가지 못하고 뒤처지는 사람들. 벨은 꿈속에서 아버지의 뒷모습을 본다. 그것은 인류의 슬픈 희망이다. 우리는 앞서 태어난 자들의 지혜를 빌리며 살지만, 더 이상 우리를 앞설 수 없는 그들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한곳을 보며 나아가고 있다는 유구한 착각은 먼지처럼 사라지고, 마침내 각자가 각자의 선택을 한다. 모든 기억을 뽑아 데이터로 전환하는 침대에 누워 누군가는 생각할 것이다. 저 너머가 삶이든 죽음이든 괜찮다고. 이미 답은 내려졌으니까. 그리고 결과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을 유언 몇 마디를 남기겠지.

“아무것도 모르시네요. 나를 체포하면 범죄가 사라질 거라 생각합니까? 난 자유로운 쥐예요, 난 두려움을 먹고 살죠. 난 우리 동족이 어딜 향해 가고 있는지 완벽하게 알고 있어요.”
(중략)
“이해할 수 없는 게 있습니다. 왜 아이를 굶겨 죽였을까요?”
내가 묻자 여왕 쥐가 말했다.
“아마 처음부터 끝까지 죽음을 목격하고 싶었겠지. 그가 미쳤다는 것과 그 일이 엽기적인 사건이라는 걸 기억해두세요. 쥐는 쥐를 죽이지 않아요.”
그날 밤 나는 신종 바이러스에 동족이 전염되는 꿈을 꿨다. 쥐는 능히 쥐를 죽일 수 있다. 이 말이 잠에서 깰 때까지 머릿속을 울렸다. 모든 게 예전 같지 않을 거란 걸 알고 있었다. 그게 단지 시간문제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 로베르토 볼라뇨, <경찰 쥐>

모든 믿음은 배신당할 운명이다. 쥐는 쥐를 죽이지 않는다는 믿음이 그렇듯이. 서로를 많이도 죽이는데도 사람으로 넘쳐나는 지구에서, 사람 또한 여러 가지 믿음들로 버티며 뭔가 많이 이뤄왔다. 그런데 갑작스레 세상을 휩쓴 바이러스는 인간의 죽음이 이 별의 희망이라 말한다. 동전의 뒷면을 받아든 인류는 새삼스레 허망하다. 이 모든 것은 무엇을 위하는가? 동전을 든 사내는 묻는다. 애석하게도 그럴듯한 답은 준비되어 있지 않다. 답하지 못한 자가 할 수 있는 일은 파도에 몸을 맡기듯 공기를 가르며 날아오르는 동전에 생사를 거는 것. 불평할 새도 없이.
트랜스휴먼이라는 살육은 혹시 동족을 죽이는 새로운 바이러스가 아닐까. 가능할지 오만일지 모르나 인간은 이를 끊임없이 시도할 것이다.

▲동전을 던지기 전에

“이럴 필요는 없잖아요.”
“하나같이 그 소리군. 이럴 필요 없지 않느냐고. 특별히 선심을 베풀지. 앞면과 뒷면 중 골라.”
“아뇨. 그런 짓은 안 해요. 어차피 동전이 아니라 당신이 결정하는 거잖아요.”
“동전도 나와 생각이 같을 걸.”
-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中 살인마와 여자의 대화

“다음은 무엇인지 궁금해.” 핵폭탄이 터져도 누군가는 말한다. 인류의 가장 큰 동력은 호기심이다. 하지만 호기심은 항상 무시무시한 괴물이 되곤 했다. 그래서 호기심은 두려움을 데리고 산다. 샴쌍둥이처럼 둘은 하나다. 사람은 늘 궁금하다. 세상이 어떻게 될지, 우리는 어디까지 가게 될지, 어떤 믿음이 살아남고 어떤 믿음이 보기 좋게 배신당할지. 후세에 대한 책임이란 말은 진부하다. 단지 정말 궁금하다. 오래오래 살아남아 모든 동전 던지기의 결과를 볼 수만 있다면. 지금 당장 내 앞에 날아오르는 동전은 두렵기 그지없지만.

무참한 살육. 황당무계한 기술. 우리는 미래의 우리에게 무참히 살해당할 운명이다. 더럽고 치사하니 앞면 뒷면 고르는 걸 거부할 수 도 있다. 그러나 더 이상 동전 던지기를 거부할 수 없을 때, 당신의 유언은 무엇일까?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사람은 변명하려 할 것이다. 불가항력의 파도에 몸을 맡기더라도 존재의 불멸을 위해 생각하자. 고민하자. 우리가 생각하는 존재인 한, 눈 감은 후가 삶일지 죽음일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어차피 생사를 가르는 동전의 이차원 세계에 당신의 의지는 개입하지 못한다.

“틀렸어요. 당신들 완전히 틀렸다고요.”
“어떤 점에서요?”
“당신들이 저장하고 다운로드한 것들. 내 일부들. 물에 복사한 그것들이 정말 어떤지 당신들은 모르겠죠. 난 코드도 정보도 아니에요. 이 기억들은 사실에 그치지 않아요. 그 이상이죠. 그 기억들은 내 가족과 연인, 엄마, 여러 해 전에 죽은 내 동생이에요. 사랑. 내 본질은 그겁니다. 사랑. 난 사랑이에요.”
- <이어즈 & 이어즈> 中 침대에 누운 누군가의 유언

중요한 것은 다시 믿음이다. 앞면 뒷면 중 하나만 선택해 믿으라는 것이 아니다. 게임에서 이기려면 다른 확신이 필요하다. 그것은 바로 ‘동전 던지기는 실은 내게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확신이다. “왜 중요하지 않지? 이것은 당신이 사느냐 마느냐 문제인데.” 살인마는 묻는다. “왜냐하면, 동전은 어디로든 떨어지니까.” 그 다음 말할 마지막 유언, 그 몇 마디가 인생의 판돈이다. 고뇌와 질문을 뒤로하고 족제비로부터 쥐들을 구하러 달려가는 경쾌한 발걸음. 소중한 이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며 내 존재의 답은 사랑이라 말하는 눈동자. 그러나 오래도록 정의와 사랑을 말해온 인류는 확신 없이 불안하게 과거의 뒤통수를 보고 있다.
김연우 <소피움 인문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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