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의 눈, 청년의 인문학]조국의 딸 살해 위선의 애국마차

김시인 | 2019-09-23 06: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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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파상의 ‘비곗덩어리’ & 위선의 애국마차
신심어린 삭발과 진심어린 탁발의 꼴라보

 마차 안의 사람들은 그 음울한 새벽빛 속에서 서로의 얼굴을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가장 안쪽에는 포도주 도매상 르와조 부부가 마주앉아 졸고 있었다. 그는 교활한 노르망디인 사기꾼으로 통했다.
 그들 옆에는 좀더 위엄있고 상류계급에 속하는 라마동씨가 있었다. 그는 방적 공장 세 개를 갖고 있어서 면직업계에서 덕망이 있었다.
 그 옆에 있는 위베르 백작 부부는 노르망디에서 가장 고귀한 사람들이었다. 백작은 기교를 부려 앙리 4세와 닮았다는 것을 강조하려고 애썼다.
 백작 부인 곁에는 주기도문과 아베마리아를 중얼거리는 수녀 두 명이 앉아 있었다.
 두 수녀 맞은편에는 남자 한 명과 여자 한 명이 모든 승객의 시선을 끌고 있었다. 남자는 공화주의자 코르니데로 그는 엄청난 재산을 모조리 마셔 없애버린 청년이었다.
 여자는 매춘부로 비곗덩어리라는 별명에 어울리게 나이에 비해 일찍 몸이 뚱뚱해져 있었다.
 여자가 누구인지 알게 되자 정숙한 여자들 사이에서 속삭이는 소리가 퍼져나갔다. 그 여자들이 ‘매춘부’니 ‘공공의 수치’니 하며 큰소리로 쑥덕거리자 그녀는 고개를 쳐들어 도전적이고 대담한 눈길로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훑어보았으므로 마차 안은 이내 조용해졌다.
- 모파상의 ‘비곗덩어리’ 中
 
▲불편한 공간, 불편한 관계, 그리고 불편한 여행

 열 명의 난민들이 한 대의 마차로 피난 여행을 떠나고 있다. 프랑스 전통귀족이며 의원인 위베르 백작 부부, 사업가이자 역시 의원인 라마동 부부, 부유한 와인 도매상인 르와조 부부, 늙고 젊은 수녀 둘, 공화주의를 신념으로 삼는 청년 백수 코르니데, 그리고 비곗덩어리라고 불리는 매춘부 엘리자베스 등 어울리지 않은 조합의 여행객들은 불편한 시절에 불편한 공간 속에서 불편한 관계들끼리 불편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국가에 대한 공훈은 없으면서 조상의 할머니가 왕과 간통한 사단을 업적으로 내세워 명문 귀족이 된 가문의 위베르는 프랑스 대혁명 당시 목숨이 아까워 줄줄이 해외로 도피했던 귀족들을 거울삼아 지금 부인을 데리고 내빼고 있다.

 혁명의 과실로 부를 축적한 사업가 라마동이나 르와조 역시 부르조아답게 이해득실을 따지는 재주가 비상하니 이들 세 쌍의 남녀들은 ‘수구 꼴통’ 내지 ‘꼴통 보수’의 눈으로 나머지 일행을 얕잡아 보고 있는 것이다. 두 명의 수녀는 그나마 종교인이니 눈감아 주지만 공화주의자랍시고 버르장머리 없이 건방지게 구는 젊은 코르니데는 아주 못마땅하다. 매춘부 엘리자베스는 불가촉 천민이니 두말 할 나위가 없다. 이들의 어색한 여행이 순조로울 리가 없다.

 그런데 기름과 물처럼 서로 섞일 것같지 않던 이들이 어느 순간 적대감을 씻고 즐겁게 화해한다. 무엇 때문일까? 경멸과 조소와 분노로 일관하던 마차 안의 불편합을 해결하는 주인공은 사람이 아니라 술과 고기와 빵이다.

 위베르 백작 부부는 음식을 먹는 사람들에 둘러싸여 그 냄새에 질식할 듯했으며 라마동 부부와 함께 탄탈로스의 고통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때 라마동 부인이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늙은 수녀가 비곗덩어리의 잔을 받아 포도주를 입 안으로 흘려 넣었다. 그러자 라마동 부인은 눈을 뜨고 생기를 되찾았다. 늙은 수녀는 배가 고파 그런 것이라며 보르도 와인을 한 잔 더 부인에게 먹였다.
 비곗덩어리는 위베르와 라마동의 부부에게도 음식을 대접하고 싶은 마음을 전했다. 그러나 네 사람은 먼저 책임을 떠안으려 하지 않는 듯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결국 백작이 나섰다. 그는 비곗덩어리에게 부인의 호칭을 써가며 감사한 마음으로 호의를 받아들이겠다는 뜻을 거드름을 피우며 말했다.
- 모파상의 ‘비곗덩어리’ 中
 
▲공대(恭待)하여 주리라, 그리하여 공대를 받으리라

 폭설이 내리는 들판과 진창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마차 바퀴, 목적지는커녕 쉴 마을 하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위신과 체면을 차릴 여유는 없다. 바로 그때 젊고 여린 귀부인의 졸도는 마차 안의 금수저들에게는 얼마나 커다란 행운이던가? 응급 처치라는 명목으로 졸도한 귀부인의 뱃속으로 들어간 포도주는 주저와 거리낌을 날려버리는 묘약이 되었다.

 굶어 쓰러지는 판에 신분이 무어고 지위가 무언가? 매춘부의 닭고기가 매춘한 것도 아니요 매춘부의 빵이 매춘부의 살은 아니지 않은가? 그날 그 마차 안에서 루앙의 부유하고 점잖은 상류층들은 루앙의 가난하고 천대받는 하층민의 술과 빵과 고기를 게걸스럽게 먹어댔다.

 환락의 만찬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 남은 건 무엇일까? 매춘부의 텅 빈 바구니를 아쉬워 하며 쩝쩝거리던 그들에게 놓인 숙제는? 이제 저 여인을 어찌 할 것인가? 비록 그녀의 호의를 받아들이긴 했지만 그토록 조롱하고 경멸하던 매춘부의 음식을 거덜내고도 여전히 냉대할 것인가? 절대 그럴 수 없다. 만약 그럴 경우 그들은 매춘부의 음식을 탐욕스럽게 쩝쩝거리던 돼지들이 되고 만다. 그들은 영악하게도 정신승리법을 쓸 줄 안다.
 
 은이 : 아줌마는 나미가 너무 착해서 좋아. 아줌마한테 너 신경질 내지도 않고 예의도 바르고.
 나미 : 아버지한테 배웠어요. 사람들한테 예의바르게 대하라구요. 그게 그 사람을 올려주는 것같지만 사실은 내가 더 올라가는 거라구요.
- 영화 임상수 감독의 ‘하녀’ 中
 
 마차 안의 상류계급은 뜻하지 않게 마음에도 없는 공화주의를 실현하고 말았다. 영화 속 재벌 2세의 어린 딸 나미의 말처럼, 엄밀히 말하면 그 아비가 말한 ‘사람들’은 재벌의 집에서 하녀처럼 일하는 ‘사람들’일 텐데, 남을 천대하여 자기를 올리는 것보다는 남을 공대하여 자기를 올리는 일이 훨씬 세련되고 우아하다. 천한 매춘부의 음식을 탐한 천박한 상류계급보다는 창녀를 부인으로 호칭하고 격상시킴으로써 살롱 마담의 환대를 받았다고 자위하는 것이 그들의 정신 건강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상류계급의 영악한 두뇌는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비곗덩어리의 피난 여행이 프로이센 장교들과 병사들에 대한 적개심이란 걸 알아차리자마자 약삭빠른 백작은 엘리자베스의 피난을 ‘애국적 망명’으로 추켜세우며 본인도 그와 다르지 않다는 ‘묻어가기’ 수법을 발휘하여 매춘부에게 호감까지 구걸하고야 만다. 이제 이 피난 마차는 복잡한 관계들이 뒤엉킨 불편한 마차가 아니라 공화(共和)와 평등(平等)의 깃발을 꽂고 달리는 ‘애국 마차’가 되었다.
 
▲천민의 품에 안긴 Noblesse oblige

 귀족과 부르조아의 입에서 뱉어지는 비곗덩어리 엘리자베스에 대한 어색하고 낯간지러운 과도(過渡)한 과공(過恭)은 비상한 시기에 일어난 비상한 방책이었으므로 오래가지 않았다. 그날 밤에 도착한 숙소에 주둔하고 있던 프로이센 군대의 장교가 엘리자베스의 직업을 알고는 그녀에게 하룻밤을 요구한다. 하지만 엘리자베스의 피난이 프로이센의 지배에 대한 모멸감이었기에 젊은 그녀가 이에 응할 리가 없다.

 마차는 이튿날 출발하지 못한다. 매춘을 거절당한 장교가 마부에게 출발 허가를 내리지 않은 것이다. 전날 밤에 비곗덩어리로부터 장교의 야만적인 요구를 듣고 하나같이 공분(公憤)했던, 뜨거운 애국심으로 똘똘 뭉쳤던 ‘동지’들은 그들에게 맞닥뜨린 사건에 망연자실한다. 혈기방장한 장교는 엘리자베스를 원한다. 비곗덩어리는 추호도 그럴 의사가 없다. 그들의 피난 마차는 출발하지 못한다. 음심을 해결하지 못한 장교 역시 놓아줄 의사가 추호도 없다. 모든 것은 비곗덩어리에게 달렸다. 이제 저 여인을 어찌 할 것인가?
 
 이날 아침도 출발 명령은 떨어지지 않았고 아침 식탁은 침울했다. 그때부터 비곗덩어리에 대한 냉랭한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었다. 전날 밤 일행들을 위해 프로이센 장교를 찾아가지 않은 그녀에 대한 원망의 마음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일행들 몰래 그 일을 한다는 간 너무도 쉬운 일이었고 장교에게 일행들의 난처한 상황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온 것이라 말한다면 체면 구길 일도 없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까지 했다.
 르와조는 고약한 여자가 언제까지 자기들을 여기에 붙잡아 둘 생각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라마동 부인은 프로이센 장교가 꽤 괜찮은 사람이며 그가 프랑스 장교가 아닌 것에 애석하다고 말했다. 그 장교가 모든 여성들이 반할 정도로 멋진 남자일지도 모름다고까지 했다.
- 모파상의 ‘비곗덩어리’ 中
 
▲단 한 명의 인간과 아홉 개의 비곗덩어리

 일시적이고 이기적인 필요에 의해 결속된 동지적인 관계는 사상누각이다. 엘리자베스를 향한 싸늘한 시선과 냉랭한 침묵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강도가 심해졌다. 하지만 교활하기 그지없는 여섯 명의 상류층은 루앙의 사교계에서 익힌 능란한 술책과 능숙한 화술로 공략하기 시작한다.

 여자들은 직업 정신을 무기로 삼아 비곗덩어리를 저미기 시작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직분과 직업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 일은 어떤 비상한 상황에서도 흔들림 없이 수행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진정한 직업 정신이란 국적을 가리지 말아야 한다는 데까지 이르렀다. 그녀들은 자기들의 논리를 뒷받침하기 위해 역사 속에 잠든, 희생과 봉사로 공공의 이익에 복무한 모든 여자들을 발굴해냈다.

 이 음흉한 모사에 그동안 침묵으로 일관하던 수녀들이 끼어들었다. 백작 부인이 종교와 희생이라는 것에 질문하자 늙은 수녀는 기다렸다는 듯이 희생의 숭고함에 대해 설교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성서의 모든 페이지에 누워있던 종교적 희생자들의 거룩한 얼굴들을 엘리자베스에게 들이밀었다. 늙은 수녀는 의도가 순수한 모든 일들은 교회뿐만 아니라 하나님도 용서하고 칭찬한다고 말했다.

 최종 마무리는 남자들이 담당했다. 백작은 이제까지 썼던 부인이라는 호칭을 내던지고 아가씨라고 부르며 비곗덩어리를 하류로 격하시켰다. 하찮은 존재의 하찮은 고집 때문에 공공의 이익이 침해될 수 있다고 협박하기도 하고 이국의 멋진 남자에게 각인될 당신의 예쁜 모습을 상상하라고 구슬리기도 했다. 백작은 사회적 책무 운운하며 자신이 떠맡아야 할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최하위 천민에게 슬며시 안기고 있었다.

 희망의 아침이 밝았다. 비곗덩어리를 사지에 몰아넣고 밤새 축배를 들었던 공범자들은 떠날 채비를 했다. 엘리자베스가 마차 앞으로 나타나는 순간 그들은 정확히 엿새 전 루앙의 호텔 앞에 섰을 때의 태도로 되돌아갔다. 고귀한 우리들이 어찌 미천한 창녀와 함께 같은 마차를 탄단 말인가? 비곗덩어리가 밤새 야만의 시간을 보내는 동안 그들은 남은 여행을 위해 진수성찬을 준비했다. 아무 것도 준비하지 못한 엘리자베스를 두고 그들은 아무 거리낌도 없이 아무 수치심도 없이 쩝쩝거리며 배를 불려나갔다.

 공범의 대열에서 의로움과 관계없이 제외된 코르니데가 ‘라 마르셰예즈’를 부르기 시작한다. 모두를 불편하게 하는 그 노래는 어느새 흐느껴 우는 한 여자만을 제외하고 따라 부르는 마법을 발휘한다. 그들은 무슨 심정으로 혁명의 노래를 제창했을까? 인간의 탈을 쓴 짐승이지만, 그래도 자기들이 저지른 죄가 있어 아무리 부정하려 해도 그럴 수 없어서, 혁명과 애국이 듬뿍 담긴 ‘라 마취제’를 놓지 않았을까? 한 여자의 흐느끼는 소리를 압도하고도 남을 집단 최면의 제창은 그래서 애국 마차에 울려퍼진 위선의 노래가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그들은 ‘가자, 조국의 아들과 딸들아. 영광의 날이 다가왔다’고 부르듯이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싸우자던 뜨거운 맹세’를 다짐했을까.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의 삭발. 오마이뉴스 제공
 
▲아니할 삭발은 불효, 아니할 탁발은 구걸

 19세기 말 루앙을 떠난 ‘애국 마차’가 21세기 초 광화문에 도착했다.마음에도 없는 ‘라 마르셰예즈’를 불렀던 마차 안의 애국지사들은 여전히 마차 안에 웅크리고 있는가? 그들은 광화문에 도착하기 전에 들른 광주에서 애국의 노래를 애써 불렀다. 그들은 ‘가자, 조국의 아들과 딸들아. 영광의 날이 다가왔다’고 부르듯이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싸우자던 뜨거운 맹세’를 다짐했을까? 또한 그들은 ‘무장하라 시민들아, 적들의 더러운 피를 밭고랑에 저시자’고 부르짖듯이 ‘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고 외쳤을까? 아니면 19세기 말의 위선자들처럼 비상한 시기의 불편함을 견디기 위해 일시적으로 붕어가 되었을까?
 
 승냥이 울음따라 따라 간다. 별빛 차가운 저 숲길을 / 시냇가 물소리도 가까이 들린다. 어서어서 가자 / 길섶의 풀벌레들 저리 우니 석가세존이 다녀가셨나 / 본당의 목탁소리 귀에 익으니 어서어서 가자 / ( ... 중략...) / 뒷전에 있던 동자승이 눈 부비며 인사하고 / 합장해주는 내 손끝 멀리 햇살 떠올라 오는데 / 한수야 부르는 맑은 목소리에 깜짝 놀라 돌아보니 / 해탈 스님의 은은한 미소가 법당 마루에 빛나네
- 가수 정태춘의 ‘탁발승의 새벽노래’
 
 위선의 노래를 들킨 늙은 공범자는 회개와 참회를 하려 했음인가? 성당에서 나와 법당으로 들어가 야훼 대신 석가를 알현하고 무슨 소원을 빌었을까? 합장해주는 그의 손끝 멀리 햇살 떠올려주는 일이야 세존의 넉넉한 마음일진대 굳이 부처를 찾고도 합장 하나 올리지 못할 좁쌀 소견으로 어찌 중생을 구제하고 민생을 구휼할 수 있으랴? 삭발의 거룩함은 루앙 여인의 몸을 더럽힌 짐승들에 비길 만하고 탁발의 거룩함은 루앙 여인의 밥을 갈취한 강도들에 견줄 만하니 차마 보기 민망하고 차마 보기 부끄럽다.

 혁명의 시기에 나라를 버리고 외국으로 도주하던 버릇은 비상한 시기에 나라를 버리고 왜국을 두둔하는 짓으로 변모했다. 매춘의 이름으로 ‘조국의 딸’을 팔아 그것을 직업이라 강변하던 그들은, 다시 한반도에서 직업의 이름으로 ‘조국의 딸’을 팔아 그것을 매춘이라 위안삼던 그들은, 이제 어떠한 이름으로 ‘조국의 딸’을 팔아 이리저리 우려먹을 참인가? 비장한 심정으로 삭발하고 간곡한 마음으로 탁발하면 민심도 움직이련만, 아니할 삭발은 불효에 다름 아니요 아니할 탁발은 구걸에 다름 아니니 해탈 민초의 은은한 미소가 걷히기 전에 부디 자제하고 또 자제하시라.
김시인 <인문학공간 소피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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