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찬곤말과세상]아줌마, 나 좀 자브당겨 주쇼!

김찬곤 | 2018-11-02 06: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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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주 승촌보 영산강문화관에서 강의를 마치고 영산강 너머 나주 금천에 사는 깨복쟁이 친구 집에 들렀다. 친구 얼굴도 보고 친구 집 바로 옆에 있는 형님 과수원에서 단감을 좀 따 가야겠다, 하고 들른 것이다.

 형한테 전화를 해 감 좀 따 가겠다 했다. 형은 배를 따 저장고에 넣는 일을 하느라 여전히 바빴다. 전화 받는 것도 아까울 정도였다. 그래도 과수원 안쪽에 들어가면 감이 잘 익었다 하면서 마음껏 따 가라 했다. 일은 못 도와주고 감만 챙기려 하니 미안하기만 했다. 하지만 두 딸이 단감을 워낙 좋아하는지라 염치불구하고 전화를 한 것이다.

 친구 집 옆에 주차를 하고 차 키를 잠그고 돌아설 때였다.

 “아줌마, 아줌마, 나 좀 자브당겨 주쇼.”

 설마 나를 부르는 것은 아니겠지 하면서도 뒤를 돌아봤다.

 한 어르신이 밭 가 고랑에 앉아 계셨다. 어르신은 다시 한번 나를 불렀다.

 “아줌마, 나 좀 자브당겨 주쇼.”

 가까이 가 보니 어르신이 고랑에 빠져 꼼짝을 못하고 있었다.

 “내가 발을 헛디뎌 여기 빠져 브렀소. 발에 쥐가 나서 이렇게 옴짝달싹 못하고 있소.”

 고랑은 깊지 않았다. 다행이 물도 없었다. 내 팔뚝 깊이쯤 되었다. 손을 짚고 올라오면 나올 수 있는 고랑이었다.

 어르신은 두 손을 나한테 뻗으며 잡아당겨 달라 하셨다. 나는 어르신을 일으키려고 두 손으로 어르신 손목을 잡고 당겼다. 그런데 어르신은 하체에 아무 힘이 없었다. 아니 하체에 힘을 주지 못했다. 힘을 주지 못하는 상태에서 일으키려 하니 쉽지 않았다.

 나는 내가 좀 잡아당기면 어르신이 발에 힘을 주고 일어나실 줄 알았다. 하지만 어르신은 발을 마음먹은 대로 구부리지 못했다. 발을 일자로 쭉 뻗어 발바닥을 땅에 댄 상태에서 일으켜 세워야 했다. 나는 온 힘을 다해 어르신 두 빨을 잡고 당겼다. 겨우 일어나셨다. 일어나 보니 어르신 몸이 나보다 더 좋았다. 하지만 하체를 자유롭게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였다. 발을 떼서 걷기는 하지만 뭔가 부자연스런 어른들을 가끔 보는데, 이 어르신이 그랬다.

 어르신은 고랑에서 나와서야 한마디 하셨다.

 “나는 뒷모습만 보고 아줌마인 줄 알았소. 고맙소. 지비 아니었으면 여기서 하루 내내 있을 뻔했소.”

 친구를 만나고 집으로 오는 내내 어르신 얼굴이 떠올랐다. 고랑에 빠지는 순간, 빠졌을 때 옴짝달싹 못했을 때, 일어나서 나오려 해도 발이 마음처럼 움직이지 않았을 때, 발에 힘을 줘도 힘이 가지 않을 때, 땅을 손으로 짚어도 몸을 일으켜 세우지 못했을 때, 어르신 마음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겹쳤다. 절망, 아득함, 무섬증, 허망함, 한탄, 별의 별 생각이 스쳐갔다.
김찬곤

광주대학교에서 글쓰기를 가르치고, 또 배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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