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찬곤의 말과 세상]‘오랑캐꽃’ 이름에 얽힌 이야기

김찬곤 | 2018-05-11 06: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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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운과 이원수의 ‘제비꽃’ 시1
 전라남도 영광 출신 시조 시인 조운(1900~?)이 있다. 그는 자유시로 등단한 뒤 시와 시조를 같이 쓰다가 시조에 둥지를 틀었다. 조운은 시조의 정형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형식과 내용면에서 여러 실험을 했고, 거의 자유시에 가까운 시를 썼다. 1945년 해방이 되자 그는 조선문학가동맹에 들어가 잠깐 활동했고, 1949년 식구들과 함께 북으로 넘어간 월북 작가이다.

 조운이 쓴 시 가운데 ‘오랑캐꽃’이 있다.
 
 넌지시 알은 체하는
 한 작은 꽃이 있다
 
 길가 돌담불에
 외로이 핀 오랑캐꽃
 
 너 또한 나를 보기를
 나
 너 보듯 했더냐.
 
 위 시에서 오랑캐꽃은 ‘제비꽃’을 말한다. 제비꽃은 꽃 모양이 하늘을 나는 제비를 닮아, 또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올 무렵(삼짇날)에 꽃이 핀다고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그런데 이때는 춘궁기로 양식이 거의 바닥나는 시기다. 북쪽의 오랑캐 여진족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춘궁기가 되면 우리 땅에 쳐들어와 양식을 빼앗아 가고 논밭에 뿌릴 씨앗마저 강탈해 갔다. 제비꽃이 필 무렵이 되면 함경북도·량강도·자강도 사람들은 오랑캐가 쳐들어올지 몰라 하루하루를 걱정과 근심으로 살아야 했다. 그래서 그 이름이 ‘오랑캐꽃’이고, ‘시름꽃’이다.

 함경북도 경성 출신 이용악의 시 ‘오랑캐꽃’(1939)에 이런 구절이 있다. “긴 세월을 오랑캐와의 싸움에 살았다는 우리의 머언 조상들이 너를 불러?‘오랑캐꽃’이라 했으니 어찌 보면 너의 뒷모양이 머리태를 드리운 오랑캐의 뒷머리와도 같은 까닭이라 전한다.” 시 ‘오랑캐꽃’은 1947년 그가 세 번째로 낸 시집 책 제목이기도 하다. 위 구절에서 ‘머리태’는 ‘머리채’의 북한말이고, ‘길게 늘어뜨린 머리털’을 뜻한다. 이것을 변발이라 하는데, 그 모양이 제비꽃 꽃뿔(꽃받침이나 꽃부리 일부가 길고 가늘게 뒤쪽으로 뻗어난 돌출부) 또는 꿀주머니 모양과 닮아 ‘오랑캐꽃’이라 했다는 것이다.

 제비꽃은 땅바닥에 딱 달라붙어 봄이 왔다고,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온다고, 저 멀리 남쪽 바다를 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이 꽃이 고개를 빳빳이 들지 못하고 수줍게 머리를 수그리고 있다. 위 시 초장의 “넌지시 알은 체하는” 구절은 바로 이 모습을 노래하고 있다. 더구나 이 앉은뱅이꽃은 돌담불에 외로이 홀로 피어 있다. 나는 너를 보고 쓸쓸함을 느꼈는데, 너 또한 나를 보고 외로움을 느꼈겠구나, 하는 시다.
김찬곤

광주대학교에서 글쓰기를 가르치고, 또 배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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