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갈피갈피]전라도에서도 ‘청어’를 즐겼다

조광철 | 2018-11-07 06: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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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항 과메기는 원래 청어로 만든다고 한다. 청어 어획량이 줄자 궁여지책으로 꽁치를 사용했을 뿐이란다. 그런데 다시 청어 어획량이 조금 늘자 일부에선 꽁치 대신 청어로 만든다는 소문도 들린다.

 과메기는 한때 유명세를 누렸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이른바 ‘국민 생선’이란 게 등장했다. 처음에는 거제도 출신의 대통령 때문에 멸치가 국민 생선이 되더니 다음에는 목포 출신 대통령이 나와 멸치가 홍어에게 그 자리를 내줬다. 그리고 다시 포항 출신 대통령이 등장하자 과메기가 홍어 자리를 꿰찼다. 그 영향인지 그 무렵 필자 주변에선 멀리 포항까지 주문해 과메기를 먹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런 유의 열풍은 간혹 엉뚱한 오해를 낳는다. 과메기의 원 재료가 청어란 사실이 알려지면서 마치 청어는 포항지역에서만 즐겨 먹는 생선으로 비쳐졌다. 사실 이걸 오해라고 부르기 전에 청어가 낯선 생선이 된 게 문제였다.
 
▲“가장 흔하고 익숙했던 생선, 청어”
 
 필자는 지금 밥상에 올라온 찌개에 든 생선이 고등어가 아닌 이상 그게 정어리인지 청어인지 구분하지 못한다. 어린 시절 청어를 먹어본 기억도 없다. 생애 처음으로 내 돈 주고 직접 고른 생선은 삼치도 고등어도 아닌 통조림에 든 꽁치였다. 그 시절엔 산행이나 야유회를 갈 때면 배낭에 적어도 하나씩은 챙겨간 게 꽁치통조림이었다. 하기야 그때는 - 아니 정확히 표현하자면 필자의 눈에 - 세상에 통조림은 딱 세 종류밖에 없었다. 황도통조림, 백도통조림, 그리고 꽁치통조림.

 신기하게도 이제와 옛 기록을 찾아보면 불과 몇 세대 전까지 가장 유명했던 생선이 바로 청어였다. 값이 비싸거나 맛이 특별해서 유명한 게 아니었다. 가장 대중적으로 소비되는 것이 청어였기 때문이었다. 다시 말해 가장 흔하고 익숙한 게 청어였다는 얘기다.

 익숙한 것이다 보니 청어를 부르는 말도 많았다. 가난한 선비를 살찌게 하므로 ‘비유어’라 했고, 이 발음이 변해 청어를 일컫는 순 우리이름인 ‘비웃’이 생겨났다는 말도 있었다. 한자로는 청어 외에 벽어로도 썼다. 벽어는 푸른 벽 자를 쓰니 의미는 청어와 같다. 하지만 벽어를 중국어로 읽으면 ‘비유’고 이것이 비웃이 됐다는 주장도 있었다. 청어가 흔하고 낯익은 생선인데서 생겨난 말의 잔치였을 것이다.

 여기서 필자가 하고픈 말은 오래전부터 청어가 전국적인 생선이었고 전라도에서도 많이 먹었다는 사실이다. 청어와 전라도의 관계에 대한 아주 고전적인 사례는 이순신의 ‘난중일기’일 것이다. 난중일기엔 청어 또는 벽어란 이름으로 이 생선이 자주 등장한다. 기록의 핵심은 이렇다. 전라도 사람들이 청어를 열심히 잡았고 그것을 팔아 수군들의 군량미를 조달했다는 것이다. 생선 하나가 전쟁의 승패를 좌우할 수야 없었겠지만 청어가 없었더라면 임진왜란 때 전라도 수군들이 훨씬 배를 곪아가며 전쟁을 치렀을 것 같다는 인상을 주는 기록들이다.

 그런데 청어는 시기에 따라 어획량이 들쑥날쑥했다. 16세기 허목은 ‘도문대작’이란 글에서 이런 얘기를 한다. “옛날엔 청어가 아주 흔했다. 고려시대엔 쌀 한 되에 40마리를 살 수 있었다. 조선시대에 들어서도 한때 쌀 한 말이면 50마리를 샀는데 요즘엔 전혀 잡히지 않는다. 참 괴이한 일이다.”
 
▲ 전라도선 수증기로 쪄 고추장 찍어먹어
 
 18세기에 이익은 ‘성호사설’에서 다른 얘기를 한다. “한때 황해도 해주에서 나던 청어가 10년이 넘도록 사라져 중국 요동지방서 잡혀 그쪽 사람들이 이를 신어라고 했단다. 그런데 요즘엔 서해바다서 많이 잡힌다는데 요동에선 어떤지 알 수 없다.”

 20세기 초엽 신안군 지도에서 유배생활을 하던 시기에 김윤식은 또 다른 얘기를 전한다. 그가 남긴 시 ‘벽어에 대한 탄식’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20년 전부터 홀연히 자취를 감추니 / 후대사람들은 그 이름과 생김새를 알기나 할까.”

 그렇다고 김윤식의 얘기가 전라도에서 청어의 전멸을 말하는 것은 아니었다. 3세대 전 순천 출신의 어류학자 정문기가 쓴 글에는 청어를 먹는 지역별 방법이 간단하게 묘사돼 나온다. 먼저 경북 과메기. 청어를 짚불에 구워 껍질을 벗겨 먹고 과메기로 쑨 죽도 많이 먹는다고 했다.

 전라도에도 청어 먹는 법이 있다고 했다. 한꺼번에 많이 먹으려면 가마에 물을 붓고 그 위에 대발을 걸치고 청어를 올려 수증기로 쪘다. 수증기에 기름이 적당히 빠진 것을 고추장에 찍어 먹으면 별미라 했다.

 이렇게 보면 청어는 포항에서만 먹는 생선이 아니었다. 다만 세상이 변하고 해류와 수온이 바뀌어 우리에게 낯선 생선이 됐을 뿐이다. 전라도 천년에 대한 우리의 기억도 그런 것은 아닐까? 말은 천년이지만 우리는 아주 최근의 기억만으로 천년의 기억을 말하는 것은 아닐까? 과거는 늘 낯선 시간이다. 그렇다고 지금의 입맛에 맞춰 과거를 들여다 볼 것까지는 없다.
조광철 <광주시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

 ‘조광철’님은 태생이 목포, 그러나 광주에 대한 누구보다 극진한 애착은 갖은 사람. 숨겨진 광주 이야기를 찾기 위해 옛 지도를 살피고, 토박이들의 살아있는 증언을 듣고, 기록의 습관을 유전자 속에 각인시켜 놓은 사람. 그의 가장 큰 기쁨은 증언과 조사를 통해 흐트러진 시간의 파편을 끼워 맞추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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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kd (2018-11-07 16:31:50)
글 잘보고 갑니다... 과메기 비린내도 나지만, 맛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