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갈피갈피]사진 한 장에 담겨있는 사실들

조광철 | 2018-06-14 06: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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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송정역 운행, ‘텐더형’ 기관차
 오늘은 사진 한 장을 보며 잠시 쉬어가는 시간을 갖도록 하자. 이 사진은 1940년에 촬영된 것이다. 최근에 필자가 근무하는 박물관이 입수한 것이다. 큼직한 증기기관차를 배경으로 중등학교 학생들로 보이는 젊은이들과 열차 승무원들이 뒤섞여 보인다. 그저 옛 사진 한 장쯤으로 생각할 수도 있으나 여기에는 많은 사실들이 담겨 있다.

 가장 먼저 시선을 붙잡은 것은 거대한 증기기관차다. 기관차의 길이는 10미터, 높이는 건물 1층 높이에 해당하는 4미터다. 기관차에는 모델명, 제작회사 등을 새긴 ‘명판’(이름표라는 뜻)이란 게 달려 있다. 이 사진 속 기관차에도 명판이 보이는데 화질이 좋지 않아 모델명만이 간신히 확인된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이 기관차가 1902년부터 1908년 사이 부산 초량동에 있던 조립공장에서 생산된 것임을 알 수 있다(조선총독부, 1929년, <차량형식도> 참조).
 
▲기관차 길이 10m·높이는 4m
 
 이 기관차의 차종은 기관차와 탄수차(석탄과 물을 적재한 차량)가 분리된 형태로 ‘텐터 형’이라고 부른다. 기관차 무게는 자체 무게만 60톤, 운행 중일 때는 70톤에 육박했다. 또한 석탄과 물을 적재한 탄수차의 무게도 40톤이나 됐다(텐더라는 말은 원래 이 탄수차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일제강점기에 이 기관차는 광주역과 송정역 사이를 운행했다. 그런데 처음부터 이 차종을 사용한 것은 아니다. 1922년 처음 광주~송정 구간이 개통됐을 당시에는 기관차와 탄수차가 일체형으로 붙은 ‘탱크 형’기관차를 사용했는데 이 차종의 무게도 50톤에 달했다(조선총독부, <조선의 사설철도>, 1925년).

 한편 광주역과 송정역 사이 15km 구간에 처음 열차가 다니기 시작한 것은 1922년 여름이고 그 해 겨울에는 광주역과 담양역 사이 21km로 운행구간이 연장됐다. 송정역에서 광주역을 거쳐 담양역에 이르는 이 구간은 공식적으로 ‘광주선’또는‘전남선’이라고 불렸다. 이 가운데 광주~담양 구간을 일부에서는 오늘날 ‘담양선’이라고 부르고 있는데 사실 1944년 광주~담양 구간이 폐쇄될 때까지 공식적으로는 단 한번도 ‘담양선’이라고 불린 적은 없었다. 담양선은 광주사람들이 자기중심적으로 부르는 비공식적인 이름이었다.

 개통 당시 광주선 철도는 민간철도였다. 철도 가설을 시작할 때 회사 이름은 ‘오주경편철도회사’였다. ‘오주’는 고을을 뜻하는 한자 ‘주’가 들어간 다섯 도시를 뜻하는데 이 회사가 한반도 남부지방에 놓으려고 하는 철도 통과지역을 상징하는 말이기도 했다. ‘경편’은 light railway를 직역한 일본식 표현으로 경량 철도의 줄임말이다. 쉽게 말해 처음에는 레일 간격이 1.453미터인 표준궤보다 좁은 협궤 철도를 놓을 생각이었다는 뜻이다.

 그런데 회사 이름은 1919년 ‘남조선철도회사’로 변경됐다. 가설할 레일 간격을 협궤에서 표준궤로 변경하기로 결정한 결과였다. 광주선 철도는 1927년 총독부가 매입해 이른바 ‘사철’에서 ‘국철’로 바뀌었다. 매입비용은 약 300만 원으로 건설비에 해당하는 금액이었다(동아일보 1928년 3월 29일자). 당시 쌀 한 섬 가격이 25~30원이었으므로 약 10만 섬 내외의 쌀값에 해당하는 거액이었다.
 
▲광주선 철도 1929년 57만 명 이용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광주선 철도를 이용했을까? 개통 첫 해인 1922년 광주군 전체 인구는 10만 명을 조금 넘기는 규모였고 그 중 시내권, 즉 광주면에 사는 사람은 1만 여명이었다. 그런데 그 해 철도 이용객은 14만 명에 달했다.

 이용객은 해가 갈수록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1923년에는 23만 명, 1924년에는 33만 명, 1925년에는 40만 명으로 늘더니 학생독립운동이 일어난 1929년에는 광주역에서 오르내리는 승객만 57만 명에 달할 정도였다(조선총독부, <사설철도 급 궤도 통계연보>, <철도요람> 등 참조). 1929년 광주역 이용객의 규모는 같은 해 송정역 36만 명, 목포역 40만 명, 군산역 53만 명과 비교해도 엄청난 숫자였다.

 한편 이 사진의 촬영 장소가 광주역인지 송정역인지는 확실치는 않다. 이를 가늠할 수 있는 시설이 사진 왼쪽에 희미하게 보이는 과선교(跨線橋)뿐이기 때문이다. 과선교란 역구내에서 철길을 안전하게 건너도록 만든 일종의 구름다리다.

 그런데 송정역의 과선교는 1930년에, 광주역의 과선교는 1935년 에 각각 설치됐다. 그래서 과선교 하나만으로는 사진을 어디서 찍은 것인지를 단언하기는 힘들다. 그러나 이 사진에 달려온 다른 사진을 참고하면 뒤편의 과선교는 광주역에 있었던 것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광주역은 1969년 지금의 중흥동 자리로 옮겨오기 전까지 대인동의 광주우체국 맞은편이자 현재 동부소방서가 들어선 자리에 있었다.
조광철 <광주시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
 
 ‘조광철’님은 태생이 목포, 그러나 광주에 대한 누구보다 극진한 애착은 갖은 사람. 숨겨진 광주 이야기를 찾기 위해 옛 지도를 살피고, 토박이들의 살아있는 증언을 듣고, 기록의 습관을 유전자 속에 각인시켜 놓은 사람. 그의 가장 큰 기쁨은 증언과 조사를 통해 흐트러진 시간의 파편을 끼워 맞추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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