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대영 영화읽기]‘5·18 힌츠페터 스토리’

조대영 | 2018-06-01 06: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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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의 진실은 어떻게 알려졌는가
 전두환의 광주학살이 있은 후, 광주의 진실은 광주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언론은 입을 굳게 다물고 있었고, 신군부의 폭압은 누구도 쉽게 입을 열지 못하게 했다. 바로 이때, 책으로는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가, 영상으로는 ‘광주비디오’가 광주의 진실을 알리는 기폭제가 되었다.

 일명 ‘광주비디오’는, 천주교성당은 물론 대학교의 동아리방 등에서 암암리에 상영되며 시민들과 학생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흐릿한 화면 속에는 한국의 군인이 한국의 국민을 학살하는 장면이 그대로 담겨 있었던 것이다. 이를 본 사람들은 분노했고, 그렇게 민주화의 열망은 하늘을 찔렀다. 이는 1987년 6월 항쟁으로 이어지며 ‘광주’는 민주화운동의 도화선이 되었다.

 ‘광주비디오’는 독일의 카메라기자였던 위르겐 힌츠페터가 찍은 ‘오월광주’의 기록필름을 기초로 만들어졌다. 국민의 눈과 귀가 되어야 할 언론이 눈과 귀를 닫았을 때, 힌츠페터의 기록필름은 광주의 진실을 알린 소중한 자료가 되었던 것이다.

 KBS PD였던 장영주 감독은 자신의 젊은 시절을 뒤흔든 ‘광주비디오’의 실제 촬영자 위르겐 힌츠페터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만들기 위해 2003년 독일에 갔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방송물은 2003년 5월18일 ‘KBS 일요스페셜-80년 5월, 푸른 눈의 목격자’로 방영되었다. ‘5·18 힌츠페터 스토리’는 장영주 감독이 이때의 방송을 보완해 내놓은 다큐멘터리다. ‘5·18 힌츠페터 스토리’는 항쟁 당시 광주의 모습을 담은 힌츠페터의 촬영 영상과 힌츠페터와의 인터뷰 그리고 힌츠페터와 연관된 사람들의 인터뷰가 주를 이루며, ‘오월광주’의 진실이 어떻게 알려지게 되었는지를 밝혀낸다.

 이로 인해 관객들은, ‘광주비디오’가 어떤 경로를 통해 사람들에게 보여 지게 되었는지를 알게 된다. 광주학살의 책임자가 대통령이 되는 것을 보고 분노한 힌츠페터는 자신의 기록필름을 토대로 ‘기로에 선 한국’을 만들게 된다. 그리고 이 방송은 1980년 9월 독일 전역에 전파를 탄다. 그리고 이를 지켜보았던 독일 유학 중의 천주교 신부는 광주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한국으로 가져왔고, 거기에 사진과 한국말 더빙이 보태져 ‘광주비디오’가 완성되었던 것이다.

 ‘5·18 힌츠페터 스토리’의 흥미로운 점 중 하나는 위르겐 힌츠페터와 김사복 씨의 일화를 영화로 만든 ‘택시운전사’와 비교해 볼 수 있다는 점이다. ‘택시운전사’는 택시운전사 만섭(송강호)이 독일기자 피터(토마스 크레취만)를 태우고 항쟁의 현장으로 들어가 ‘오월광주’를 이해하게 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택시운전사’는 극의 재미를 배가시키기 위해 애초의 역사적 사실을 윤색한 측면이 있다. 예컨대, ‘택시운전사’가 만섭이 돈을 벌기 위해 광주에 가는 것으로 설정되어 있다면, ‘5·18 힌츠페터 스토리’ 속의 김사복 씨는 힌츠페터와 1970년대 초반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였음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밖에도 ‘5·18 힌츠페터 스토리’를 보고 있노라면, ‘택시운전사’의 이야기가 극의 흥미를 돋우기 위해 윤색되었음을 알 수 있다.

 광주민중항쟁은 38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현재에도 확인되지 않은 소문과 거짓 정보가 난무한다. 그런 점에서 ‘5·18 힌츠페터 스토리’의 가치는 더욱 값지다. 선명하지는 않지만 당시의 광주가 어떤 모습이었는지를 날것 그대로 중계하고 있다는 점에서 거부할 수 없는 진실의 힘을 증명하기 때문이다.

 위르겐 힌츠페터의 죽음을 무릅쓴 치열한 기자 정신은 한국인의 양심을 깨워 민주화를 앞당기는 데 일조했다. 조금 늦은 감이 있지만, 지금이라도 위르겐 힌츠페터를 조명한 영화가 나왔다는 점은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조대영<영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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