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책방, 우리 책들]스치기 쉬운 것들을 붙잡고 들여다보다

이진숙 | 2019-08-19 06: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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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선’ 김지연 글, 사진 (열화당, 2019)

 우연하게 김지연 사진작가를 소개받았다. 책방의 인문학강좌 (‘마지막 풍경과 삶에 대한 고찰’ - 8월 27일(화))를 준비하면서다. 사진에는 문외한이지만 선뜻 초대하려는 이유는, 작업하는 사진의 주제가 ‘남광주역, 마지막 풍경’을 비롯해 ‘정미소’, ‘삼천원의 식사’, ‘자영업자’, ‘놓다, 보다’ 등으로 흥미롭기도 했고, 무엇보다 공동체박물관 계남정미소 관장이라는 직함에 관심이 갔기 때문이다. 십수년전 전북 진안에 마을공동체 탐방을 갔을 때 들렀던 곳이라는 기억이 나서 자료를 찾다보니, ‘진안골 졸업사진첩’ 사진집에 떡하니 이름이 들어 있는 것이 아닌가. 그때는 만나지 못하고 박물관만 둘러봤지만 스러져가는 것 하나도 허투루 취급하지 않는 손길과 마음에 감명을 받았던 것 같다. 오래전 인연이 이리 이어진 것이 신기했고, 광주 출신으로 50세가 넘어 늦게 시작했다는 사진공부가 20여년동안 이러한 궤적을 그려왔다는 것이 반갑고도 경이로왔다.
 
▲‘폐역’ 소식 듣고 1년간 새벽 오가
 
 모든 사물에는 그들에게만 묻어 있는 공기가 있다.

 그중에서도 사람에게서 나는 향기는 더 각별히 우리 곁에 오래 머문다. 내가 만났던 사물과 사람들의 이야기를 적어나갔다. 아득하다가도 가까이 다가서는 인연들. 때로는 못 본 척하고 싶은 것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이 내 삶에 의지가 되고 용기를 주었던 것들이다. 이들에게 살구꽃이나 딸기 향은 남아 있지 않다. 이미 나도 그런 시기를 지났으니. 그러나 여기에는 누룩과 곶감, 묵은 김치와 보리굴비 같은 오랜 풍파를 거쳐 온 시간의 냄새가 있다. 썩지 않은 삶의 냄새는 그들만의 고유한 향기다. 사소한 눈짓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는 나의 사진과 글을 지나가는 시간 속으로 조심스럽게 밀어 넣어 본다. (‘책머리에’ 작가의 말)
 
 그러한 인생여정이 있어서인지 김지연 사진작가가 바라보는 풍경은 꽤나 남다르다. 이제는 사라져가고 의미 없다고 여기는 것들, 사소해서 스치기 쉬운 것들을 붙잡고 들여다본다. 그동안에 해 왔던 사진 작업과 전시 기획이 그렇고 발간해 낸 책들이 그렇다. 최근작 ‘전라선’ (김지연 글, 사진 : 열화당, 2019)을 읽다보면 그러한 풍경과 이야기를 흔히 만나게 된다. 20여년전 곧 폐역이 된다는 소식을 듣고 1년간 새벽마다 남광주역을 오갔던 이야기부터 어릴 적 할아버지 댁의 강아지 ‘부덕이’이야기와 틈틈이 등장하는 자영업자들의 고단한 이야기를, 작가의 시선으로 거창하지 않지만 진솔하게 들려준다. 가만히 살펴보면 사진 작업을 위해 여기 저기 오가며 보고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가 주를 이루는데, ‘인생이란게 그런거 같아’라며 읊조리는 듯한 문장들을 읽고 있노라면 왠지 마음을 부여잡고 있던 긴장이 풀리는 듯하다.
 
▲순간과 일상으로 이뤄진 작은 기억들
 
 ‘늙으면 죽음을 안고 사는 기분이다. 이런 기분으로 사는 시간이 오래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108쪽)’ 라면서도, ‘사실 서학동사진관의 일이 만만치가 않다. 충분한 재력과 필요한 인력 없이 전시장을 꾸려 간다는 것은 안정보다는 늘 불안이 앞선다. 그래서 공간이 가지고 있는 여유를 느끼지 못하고 산다. 그러다가도, 오월 어느 아침에 손바닥만 한 앞마당에 놓여있는 작은 테이블에 나와 앉아 골목에서 불어오는 산들바람을 맞을 때 느닷없이 행복을 느끼는 경우가 있다. 행복은 사실 이렇게 예기치 않게 다가와 귓볼을 살짝 건드리고 지나가기도 한다(121쪽)’며 순간의 행복을 놓치는 법이 없다. 평생 소원이 예쁜 도시락 하나 제대로 싸 보는 거라는 작가는 ‘보석함이라고 해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도시락이 너무 예뻐서 차마 사용하지 못하고 간직해 두었다. 어제는 산에 사는 지인이 뜯어 준 취나물과 두릅 몇 개를 부쳐서 도시락에 담아 보았더니 이제야 내 소원은 이루어진 듯싶다. 오늘 이 도시락을 들고 서학동 사진관으로 출근을 한다(135쪽)’며, 이제야 소원이 이루어 진 날도 일터인 사진관으로 출근을 한다. ‘빛나는 계절인 오월과 무심한 넝쿨 장미의 뜻 모를 조합이 나를 오래도록 가슴 저리게 했다(153쪽)’며 나고 자란 광주를 떠나던 터라 오월의 아픈 현장을 비껴갔던 일로 늘 마음이 무겁다는 고백을 하면서도, ‘나도 안다. 어릴 적에 우리 할머니가 바로 이렇게 국수 몇 가락을 입에 넣어 주었던 그 맛을 어디에 비하겠는가(173쪽)’라며 별거 아닌 일들이 켜켜이 쌓여 버티게 해 준 인생의 힘을 소중히 품고 있다.

 김지연 작가의 사진에서 울리는 힘은 바로 그런 순간과 일상으로 이루어진 평범하고 작은 기억들에서 소중한 반짝임을 발견하는 것이리라. ‘아침에 베란다에 나가니 선풍기 석 대가 쫓겨나 있듯 아무렇게 놓여 있는 것을 보고 지난여름의 더위를 떠 올렸다. 작고 초라한 힘으로 그 여름을 막아냈을 노고가 새삼 고맙고 측은했다(177쪽)’는 작가의 시선이 무척이나 고마운 이유다.
문의 062-954-9420.

이진숙 <동네책방 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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