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 민중항쟁 근거지, 광주는 또 못지킬 듯

김현 hyun@gjdream.com | 2019-08-19 06: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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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불야학 상징 광천시민아파트 철거 임박
사적지 지정 못해 재개발 사업에 속수무책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고 했다. 하지만 개발이라는 거대한 물결 앞에서 광주의 중요 역사현장은 보존이 쉽지 않은 위태로운 촛불 신세다.

 광주 최초 연립주택 아파트. 광주 최초의노동야학이 활동한 자리. 1980년 5·18민중항쟁 당시 최초의 민중언론 ‘투사회보’가 제작된 그곳의 이야기다.

 광주 서구 죽봉대로119번길 22-9 광천시민아파트는 ‘광천동재개발사업’ 절차가 마무리되면 철거될 예정이다. 들불야학이 탄생했던 광천동성당은 사적지로 지정돼 존치할 수 있게 된 것과는 상반된 처지다.

 이에 5·18민중항쟁과 건축사적 의미가 있는 이 곳을 보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1970년 준공된 광천시민아파트는 광주 최초의 연립주택 시민아파트다. 어망공장, 제분공장, 물엿공장, 타올공장, 섬유공장 등 근로자들과 6·25 한국전쟁 이후 피난민들이 거주해온 판잣집들이 즐비하던 광천동에 1969년 광주시가 도시계획에 따라 천막과 판잣집을 부수고 아파트를 지었다. 광주 최초 아파트였다.

 ‘최초’라는 의미는 거창했지만, 실상 제대로 된 시설은 갖추지 못했다. 3층짜리 연립주택 3동이 ㄷ자 형태로 배치되고, 주택과 상가, 교회로 둘러쌓인 공간은 차량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입구가 비좁았다. 세대내에는 화장실과 취사시설이 없어 공동화장실을 쓰고 한 취사장, 세탁실, 세면장을 전 세대가 공유했다.

 총 184세대 규모였다. 하지만 재개발사업 추진이 구체화되고 있는 지금은 30여 세대만이 실거주하고 있다.
 
▲5·18투사회보 탄생한 곳

 거주공간으로는 열악한 환경이었지만, 이 곳은 현대 광주 ‘역사’와 떼어놓을 수 없는 의미를 지닌 공간이다. ‘들불야학’의 근거여서 그렇다. ‘들불야학’은 광주전남 최초 노동야학이었다. 노동자들이 많이 살던 광천동에서 야학을 통해 지식과 노동권 의식이 심어졌고, 이는 노동운동과 학생운동, 시민운동으로 성장했다.

세탁실, 세면장 등 공동시설은 시민아파트의 독특한 특징이다.

 김영철, 윤상원, 박기순, 박관현 등 이름만 들어도 쟁쟁한 5·18민중항쟁 중요 인사들이 이곳을 거점으로 교류했다. 80년 당시 광천시민아파트 주민이었던 김영철 열사는 청년회를 조직하는 등 지역 주민운동을 전개하며 토의 진행법, 세계사, 오락 프로그램 등을 가르치는 ‘생활강학’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1980년 5·18민중항쟁 땐 언론이 광주의 진실을 외면하자, 들불야학이 ‘투사회보’라는 민중언론을 발행하기도 했다. 광천시민아파트 학당에서 제작된 투사회보는 고립무원이 된 광주 시내 전역으로 배포돼 시민들이 사태의 진상을 파악할 수 있게 하는 언론의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빈민들의 판자촌을 걷어낸 자리에 최초로 세워진 광천시민아파트는 굴곡진 한국 현대사를 오롯히 감당했고, 지금 이 아파트는 광주에서 가장 허름하고 위태로운 모습으로 가장 가난한 자들을 품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 사라질 운명인가? 광주의 관문 광천동에서 역대 최대 규모의 재개발사업이 추진되면서 시민아파트 철거가 현실화되고 있다. 이 지역엔 조합원 수 2350명, 추정 사업예산 1조1300억 원. 면적 42만6380㎡ ,총 5700여 세대가 들어올 역대 최대 규모 아파트단지 조성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연말 사업시행인가가 나올 전망이다. 광천시민아파트 역시 이 재개발 사업 구역에 포함돼 있어 사업시행이 인가되면 철거를 피할 수 없게 된다. 현재 아파트에 남아있는 30여 세대는 대부분 노인들로, 재개발 추진과정에서 새 집을 찾지 못하고 주저앉아 있는 신세다.
 
▲건축사적·역사적 의미 “보전합시다”

 재개발 사업이 구체화되면서 광주지역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사적지 보전’ 차원에서 광천시민아파트를 지켜햐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5·18민중항쟁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곳인데도, 광주시가 사적지로 지정하지 않아 보존을 외면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들불열사기념사업회 김상호 상임이사는 “광천동성당 들불야학 옛터 자리만 사적지로 지정돼 있는데, 아파트도 사적지 지정이 됐더라면 문제를 푸는 데 수월했을 것”이라면서 “광천시민아파트는 광주의 첫 아파트형 생활공간으로, 건축학적으로는 주민생활공간의 변화 ‘첫 모델’이라는 상징성이 있으며, 1980년 전후 가장 치열했던 들불야학의 활동가들의 주된 무대였다는 역사성을 지니고 있어 보전돼야 할 곳”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현재까지 보존에 대한 ‘뾰족한 수’가 보이지 않는 게 문제다. 일단 보존을 주장하는 측은 광천시민아파트 3동 중 1동만이라도 보전하거나, 벽면이라도 보전할 수 있는 방안을 고심하고 있다. 이를 위해 아파트단지 내 ‘공원부지’의 일부를 활용하는 방안 등이 거론되고 있다.


 하지만 재개발 사업은 이미 계획이 수립돼 각종 평가와 심의를 마치고 사업시행인가를 앞두고 있는 상태. 조합 측은 계획 변경 시 각종 심의와 영향평가 등을 재추진해야 하는 상황이어서 불가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서구청 관계자는 “재개발사업은 시민들이 돈을 모아 진행하는 사업으로, 관에서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없다”면서 “서구청은 양 측이 원만하게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찾기 위한 대화를 이어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현 기자 hyun@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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