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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책방, 우리 책들]세상의 모든 여성에 보내는 격려

이진숙 | 2018-02-05 06: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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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딸에 대하여’
 ‘자식이라고는 달랑 하나뿐인 딸’이, 고등학교를 다른 지역에서 다니느라 3년을 떠나 있다 졸업과 함께 어느새 성인이 되어 돌아왔다. 그 3년은 짧게 느껴졌는데, 오히려 당혹스러운 것은 간혹 아이가 내가 알지 못하는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은 때다. 이젠 딸 아이만의 세계와 가치를 인정해 주어야 할 때인 것은 알겠는데 왠지 쓸쓸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자녀가 성장하는 과정은 부모에게는 답이 없는 숙제와 같다. 다 알 것 같다가도 낯선 것이 불쑥 튀어 나오고, 사는 건 이래야 해 라고 외치는 이런 저런 소리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게 될 때가 많아진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아이는 불쑥 ‘저 혼자 태어나서 저 스스로 자라고 어른이 된 것처럼 행동’하는데, 그러면 꿀밤 한 대 쥐어박고 어린시절 손 붙잡고 초록불 신호에 길 건너던 때로 되돌아가고 싶어진다. 그래서인가, 젊은 작가 김혜진의 장편소설 ‘딸에 대하여’(김혜진 장편소설, 민음사 : 2017)가 더욱 의미있게 읽혔다.

 작년부터 이어진 페미니즘에 관한 관심은 사회 곳곳에서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는데 문학에서도 그 현상은 매우 의미 있게 확산되는 듯하다. 현재 한국사회의 여성이 사는 삶을 현실감있게 반영해서인걸까. ‘82년생 김지영’(조남주, 민음사 : 2016)을 필두로 다양하고 직접적인 시선으로 여성의 문제를 풀어낸 수작들이 줄을 이었다.

 사실 여성(혹은 엄마)들에겐 희생과 헌신이 유전자 깊이 박힌 탓에 상황이 어려워질수록 가장 먼저 포기하고 다른 누군가를 돌보고 부족을 메꾸고 버텨내는 것이 익숙하다. 그러면서도 바라는 것은 그저 다른 가족(공동체구성원)들이 함께 평범하게 별일 없이 남들처럼 살았으면 하는 것이다. 하지만 2018년 우리 주변에, 청년일자리는 없고 노년층 빈곤은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묻지마 폭행, 데이트 폭력 등으로 희생당하는 여성들의 사건 소식이 계속 이어지고, 심지어 얼마 전에는 ‘검찰조직 내 성추행 사건’이 폭로되면서, 현재 우리가 사는 이곳이 견고한 서열화와 왜곡된 권위주의가 짙은 사회임을 확인시켜 주고 있다. 동시에 동성애 등 소수자에 대한 인식, 남북관계를 바라보는 시선,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상반된 다른 입장 등, 온갖 다양한 일들 사이에서 무엇이 옳고 그른지 판단하기 어렵다. 모른척하고 나만 괜찮으면 된다고 생각하고 힘겹게 삶을 이어가지만, 더 이상 나와도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이젠 인정해야 한다.

 소설 ‘딸에 대하여’에 등장하는 ‘엄마’가 겪는 혼란과 어려움도 만만치 않다. 달랑 하나뿐인 딸은 동성연인과 7년째 지내면서도 제발 인정해 달라고 당당히 요구하고,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부당해고를 당한 동료를 위해서는 시위를 하느라 돈도 몸도 다 소진해 가고 있다. 네가 나서서 꼭 그럴 필요 있냐고 해도 들은 척도 않는다. 엄마 본인은 정성을 다해 요양보호사의 역할을 해보려하지만 유별난 것으로 취급받고, ‘어떻게 사람으로서 그럴 수 있느냐’고 요양원에 항변해 봐도 상황은 바뀌지 않는다. 그저 열심히 하루하루 살아왔을 뿐인데, 노인요양보호사라는 비정규직에 남편없는 60대 여자이며 자랑할 만한 자식도 없는 기성세대로 취급받아 너무나 답답하다. 차들이 씽씽 달리는 큰 도로처럼 급변하는 사회에서, 횡단보도를 다 건너지도 못했는데 그만 신호가 바뀌어 버린 꼴이다.
 
 “한숨 자고 나면, 아주 깊고 깊은 잠에서 깨어나면, 이 모든 일이 다 거짓말처럼 되어 버리면 좋겠다. 내가 이해하고 받아들이려 노력하지 않아도 되는 순조롭고 수월한 일상. 그러나 이제 나를 기다리고 있는 건 끊임없이 싸우고 견뎌야 하는 일상일지도 모른다. 그런 걸 받아들일 수 있을까. 견뎌 낼 수 있을까. 스스로에게 물으면 고집스럽고 단호한 얼굴로 고개를 젓는 늙은 노인의 모습이 보일뿐이다. 다시 눈을 감아본다. 어쨋든 지금은 좀 자야 하니까. 자고 나면 나를 기다리고 있는 삶을 또 얼마간 받아들일 기운이 나겠지. 그러니까 지금 내가 생각하는 건 아득한 내일이 아니다. 마주 서 있는 지금이다. 나는 오늘 주어진 일들을 생각하고 오직 그 모든 일들을 무사히 마무리 하겠다는 생각만 한다. 그런 식으로 길고 긴 내일들을 지날 수 있을 거라고 믿어 볼 뿐이다.” (197쪽.‘딸에 대하여’)
 
 외면할 수 없지만 명확히 해결하기도 힘겨운 세상살이에 대해, 작가는 서로 있는 곳에서 할 수 있는 만큼 해 보자고 말한다. 그러다가 서로 이해할 수 있다면 또 하루를 살아낼 수 있는 것 아니겠냐고 한다. 추측만 했던 여성들의 소리를, 엄마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을 수 있는 소설 - 세상의 모든 딸에 대하여 엄마에 대하여 여성에 대하여 그리고 인간에 대하여 보내는 격려의 말 같다.
문의 062-954-9420
이진숙 <동네책방 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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